2009. 8. 23. 10:31

다윗의 판단 (사무엘상 26장 5-12절)


다윗의 판단

2009년 8월 23일                       본문 말씀: 사무엘상 26:5-12

(삼상 26:5, 개정) 『다윗이 일어나 사울이 진 친 곳에 이르러 사울과 넬의 아들 군사령관 아브넬이 머무는 곳을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에 누웠고 백성은 그를 둘러 진 쳤더라』
(삼상 26:6, 개정) 『이에 다윗이 헷 사람 아히멜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에게 물어 이르되 누가 나와 더불어 진영에 내려가서 사울에게 이르겠느냐 하니 아비새가 이르되 내가 함께 가겠나이다』
(삼상 26:7, 개정) 『다윗과 아비새가 밤에 그 백성에게 나아가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 누워 자고 창은 머리 곁 땅에 꽂혀 있고 아브넬과 백성들은 그를 둘러 누웠는지라』
(삼상 26:8, 개정)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내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하니』
(삼상 26:9, 개정)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
(삼상 26:10, 개정) 『다윗이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
(삼상 26:11, 개정)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하고』
(삼상 26:12, 개정) 『다윗이 사울의 머리 곁에서 창과 물병을 가지고 떠나가되 아무도 보거나 눈치 채지 못하고 깨어 있는 사람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깊이 잠들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다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더라』


누군가 다녀갔습니다. 물병만 가져갔습니다. 마땅히 당장 지옥으로 보내도 마땅한 우리들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물병만 가져갑니다. 하지만 우리는 분노합니다. 그 물병은 나의 생존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나의 소유요 나의 존재 의미를 살리는데 없어서는 안되기에 나의 분신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지금도 성도를 예수님은 쉬지않고 관여하십니다. 마치 요나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될 수 있대로 복음이 안들려오는 곳으로 멀리 도망쳤지만 하나님은 환경을 통째로 이끌고 와서 하나님이 주목하고 지목해놓은 인간은 따로 있음을 늘 통보해주십니다. 즉 “너는 나를 떠나도 나는 너를 떠나지 않는다”는 식입니다.


거기서 요나는 뱃사람과 주위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복음을 전합니다. “내가 죽으면 여러분들이 삽니다. 나를 물에 집어넣으세요” 이 말은 곧 여호와의 입장에서 세상을 다시 봐야만 삽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우리 곁에 왔다가 가시는 이유는 우리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위해서입니다. 

성도가 세상에서 처신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것은 세상이 험악해서가 아니라 성도 자신이 벌써 세상 방식에 푹 젖어있는 처지에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 하나님으로부터 인도함을 받기는 받지만 그 내부에서는 하나님의 인도 방식과는 100% 반대가 되는 성향을 지닌채 인도받고 있습니다. 성도가 날마다 하나님이 다녀간 흔적으로 못 본척합니다. 걸레질 해서라도 하나님두기를 싫어합니다.

오늘 본문에 아비새라는 장군이 등장합니다. 앞으로도 다윗과 동거동락을 할 장군입니다. 사무엘하 2:18에 보면, “그 곳에 스루야의 세 아들 요압과 아비새와 아사헬이 있었는데 아사헬의 발은 들노루 같이 빠르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심복 중에서도 심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다윗 왕에게는 충성을 다합니다. 하지만 인간 다윗에게 충성을 다하는 겁니다. 다윗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는 도무지 관심이 없습니다. 그는 자기 동생 아사헬을 죽인 아브넬이라는 귀순 장군을 다윗 몰래 죽인 것은 사적인 복수심이 하나님의 뜻보다 우선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적인 이해관계에 의해서 움직이는 사람이 다윗을 힘껏 돕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것은 개인적인 한맺임을 다윗을 통해서 해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즉 다윗은 아비새의 이상형입니다. 문제는 단지 계속 이상형이기에 자신의 욕망과 일치되지 않는 순간이 오면 더 이상 매력은 없어진다는 겁니다.

사람들의 동기부여는 결핍으로 야기됩니다. 뭔가 모자람이 상주하므로서 그 모자람을 해소하려는 차원에서 인간들은 부지런히 움직이게 되어있습니다. 아비새는, 다윗에게 주어진 모든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자신이 제대로 관여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성질은 다윗과 정반대로 나갑니다.

이렇게 되면 말만 다윗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실은 자기 자신의 야심을 이루기 위해 다윗을 이용하는 관계가 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겠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자체가 누구신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단지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기에 자기가 하는 일에 예수님이 어떤 큰 기적으로 협조해줄 것인가에 우선 관심이 가있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기름부음’에 대해 아비새와 사울왕이 같은 입장에서 보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나라’를 세우기 위해 필요한 기름부음이라는 점입니다. 이스라엘 국가는 단순히 신앙 이전에 현실적으로 엄연한 나라며 이 나라는 다른 여타의 나라들에 둘러싸여있는 형국입니다. 따라서 아비새과 같은 안목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자신이 속해있는 나라의 안녕과 질서과 정치 권력 장악과 연계시킬 것이 뻔합니다.

소위 ‘인간적인 나라’ 건설에 관심이 있는 겁니다. 사울왕이 그 표본입니다. 그래서 아비새의 경우, 사울왕은 단지 정치적인 라이벌로 간주될 뿐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운 이상 사울왕은 제거 대상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아비새 장군은 기름부음의 실제적 효능에 대해서는 무지하고 외형적인 정치적인 기능에만 가치를 두고 있는 겁니다.

거기에 비해서 다윗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세우신 나라’의 의미에 치중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울같은 사고방식이 앞으로 자기 주변에 들끓는 줄 뻔히 알기에 사울을 정치적 안목으로 보는 인사들 말고 자기처럼 하나님의 언약 관점에서 사울을 볼 자를 찾고자 하는 겁니다.

만약 이것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이스라엘이라면 비록 다윗 자신이 권좌에 앉아도 제 2사울, 제 3 사울이 얼마든지 자기 신복들 가운데 쏟아져 나올 것이 뻔한 겁니다. 옛날 이방나라에서는 왕이란 그저 권세의 표시로만 처 줄 뿐입니다. 그래서 왕이 권세를 쥐는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세도가가 등장하면 곧 그가 차기 왕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이런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안목에 대해서 다윗은 나름대로 그런 안목에 대해서 영적 싸움을 해야 될 필요를 더욱 더 느끼게 됩니다. 사울이 죽는다고 해서 적이 멈추지 않는 겁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의 운명이란 그 하나님이 행하신 ‘기름부음’의 참된 의미를 모른다면 실제적으로 모두가 적이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기름부음’의 실제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중심부에 있어 하나님께서 여전히 그 기름부음을 핵심으로 하여 일하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만약에 그 어떤 인간이라도 이러한 하나님의 일에 관여하여 막는다면 그는 사울에게 도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직접 도전한 셈이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다윗 자신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시는 나라에 대해서 자신이 사울왕과 얽힌 것, 자체를 하나님의 연속적인 나라 세우기 작업이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지금 쫓겨다니는 일조차 하나님께서 그런 식으로 하나님의 기름부음의 의미를 대외적으로 알리려는 뜻인줄 받아들이는 겁니다. 하나님을 빙자해서 사적인 복수심을 품고 있는 사람은 ‘예수님의 죽으심’에서 시선 돌린 사람입니다.

십자가에서 시선 돌려버리면 사적인 복수심이 다시 발작을 일으키는 순간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되기를 싫어하는 이 마음이 도리어 우리를 힘들게 한다는 사실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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