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27. 09:55

다윗이 해야 될 전쟁 (사무엘상 30장 1- 8절)


다윗이 해야 하는 전쟁

2009년 9월 27일                             본문 말씀: 사무엘상 30:1-8 

(삼상 30:1, 개정)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사흘 만에 시글락에 이른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네겝과 시글락을 침노하였는데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삼상 30:2, 개정) 『거기에 있는 젊거나 늙은 여인들은 한 사람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
(삼상 30:3, 개정)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읍에 이르러 본즉 성읍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삼상 30:4, 개정)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삼상 30:5, 개정) 『(다윗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도 사로잡혔더라)』
(삼상 30:6, 개정)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삼상 30:7, 개정)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가매』
(삼상 30:8, 개정)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


참 이상하지요. 도로 찾을 것 같으면 왜 하나님께서 잠시라도 잃게 하십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흔들기에 나섭니다. 사람들을 당황케 하십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우왕좌왕하게 만드십니다. 사람들은 흔들어주어야 비로소 자기 본색이 들어납니다. 인도의 성자라는 간디의 추종자들이 간디와 더불어 인간이 정권을 잡았습니다. 사람들은 간디의 정신대로 모든 것이 움직이라는 기대를 한 겁니다.

하지만 권력이 없을 때, 마치 성자들 무리처럼 보였던 그들이 막상 인도 정권을 잡고 난 뒤에는 그들이 비난했던 썩은 정권 못지 않고 비리와 권력욕와 돈 욕심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약한 때 선한 사람’은 결국 선한 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독하고 철저하게 악해만큼 힘을 소지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악이 악을 드러내는 것도 힘을 가질 때나 이야기입니다. 선한 자도 권력을 가지고 여지없이 악한 본색을 드러내게 됩니다. 다윗과 함께 동거동락한ㄷ고 해서 다 다윗 같은 사람이라고 스스로들 여겼습니다. 그런데 막상 하나님께서 그들의 처나 자식들을 아말렉 군대에게 빼앗기게 만드니 여지없이 다윗 집단 내부에서 다윗에 대한 원망이 터져나옵니다.

그동안 도대체 뭘했기에 우리에게 이런 불상사가 들이닥치게 했느냐 하는 식입니다. 다윗을 돌로 쳐서 죽일려고 합니다. 이들이 그동안 다윗으로 인해 받은 은혜라는 것은 안중에 없습니다. 한순간에 다 잊어버립니다. 이러한 인간의 악을 인위적인 법적 장치로서 막을 재간이 없습니다.

법을 강화하고 교도소를 늘인다고 해서 범죄인들이 순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범죄인들은 생각합니다. “내가 잡힌 것은 운이 없다든지 아니면 방심했기 때문이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다음의 범죄는 보다 노련해집니다. 안 집힐 수 있는 방안이 첨가되기에 범죄는 날이갈수록 발달하게 됩니다.

그러면 거기에 대해서 보복심이 더욱 강력해집니다. 즉 이 사회의 정의란 보복에 불과합니다. 사랑이 아닙니다. 다윗과 함께 있는 백성들이 그동안 지내온 것은 결코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항시 보복 가능성이 있는 마음자세를 가지고 다윗을 이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연 다윗의 집단이 이런 상태로서 사울왕의 공백을 메울 수가 있을까요?

여기에 하나님께서는 다윗 집단을 흔들어버립니다. 난데없이 아말렉 군대가 와서 다윗이 아내 둘까지 납치해가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셔야 합니다. 차후적으로 누구를 용서할 수 있는 것과는 별개로 인간은 자기에게 해꼬지 한 자를 영원히 용서하지 않습니다. 자기 아들을 살해한 자를 비록 나중에 자기 양자를 삼을 정도로 용서의 극치를 보여도 그 밑바닥에는 맨처음 가졌던 살해의지는 사라지지 자리잡게 됩니다. 

따라서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는 말라”는 말이 나옵니다. 안 잊는다는 말은, 나의 용서와 나의 사랑을 고마워할 때까지 보복을 유보해주겠다는 말입니다. 만약에 어느 순간 자신의 용서를 하찮게 여기는 순간, 이월된 복수심까지 한꺼번에 날아갈 것을 각오하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용서하고 말고의 차원을 벗어납니다. 그는 왜 하나님께서 아말렉이 쳐들어오게 했는지를 하나님에게 물어볼 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사적인 복수극에 말려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 전쟁을 자신을 위한 전쟁으로 보지 않으려 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벌려놓으신 전쟁이기에 하나님께서 마무리지기를 원했습니다.

이 아말렉 민족과의 전쟁은 출애굽기 17:8에 처음 등장합니다. 이 전쟁의 특징은, 칼의 유무가 아니라 지팡의 유무로 전쟁의 승패가 결정지어진다는데 있습니다. 아말렉 족속은 마치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한 자기장 속에서 미리 대기하면서 활동하는 민족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말렉 족속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뭔가가 새삼 규정지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마치 19세기 미국의 황량한 서부, 인디언들이 자기 땅에서 추방되고 난 뒤, 텅텅 비워있는 그 땅의 경계는 먼저 말뚝 박는 사람이 임자인 것처럼, 하나님께서 아말렉 족속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권한이 다윗에게 넘어가면서 규정된다는 점을 알려주시려고 합니다.

이미 사무엘은 죽어 없습니다. 전의 아말렉은 사무엘을 통해서 하나님의 승리가 이스라엘에게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즉 사무엘 선지자가 모세의 지팡이 역할을 한 것입니다. 출애굽기 17장에 나오는 맨처음 아말렉 전쟁에서는 지팡이의 위치에 따라서 이스라엘이 아말렉에게 밀리기도 하고 승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세의 지팡이는 전쟁터에는 없고 저 산 위에 있었습니다.

이것은 곧 원격조종하는 셈이 됩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이스라엘됨은 하나님이 원격조종으로 이루어집니다. 그 원격조정을 받는 중심 인물이 과연 다윗이어야 하기에 하나님께서 다윗의 두 아내와 더불어 다른 백성들의 아내를 안죽게 하시면서도 아말렉에 납치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즉 해체되었다가 다시 생겨나는 그 와중에서 이스라엘을 이스라답게 지키시는 자는 인간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심이 드러납니다. 오늘날 모든 교회나 말씀이 단체도 이와같습니다. 필히 중심되는 지점이 한 곳이 있어야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한 분이시며 그 중보자도 한 분이어야 하는 원칙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디모데전서 2:5)

그런데 만약에 이 하나됨을 인정못하면 여럿이 됩니다. 성경에서 여럿이란 그냥 그대로 여럿이 아니라 오직 한 곳을 쳐다보는 여럿입니다. 세상과 하나님 나라의 싸움이 어느 ‘한 곳’이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인정하신 ‘그 곳이냐’의 싸움입니다. 하나님 그 ‘한 곳’을 늘 비워놓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한 곳’에 들이서실 분이 이미 확정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뿐입니다.

따라서 다윗이 되었던 누가 되었던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할 수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그 ‘한 곳’만을 쳐다보는 사람은 그 ‘한 곳’만의 현실성만 고백할 따름입니다.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리는 사람이 고정적으로 차지할 자리가 아니라 항상 비워지고 또 비워질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주님의 지팡이가 등장되어야 될 자입니다.

다윗 중심의 이스라엘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이단이 없으면 하나님의 일은 이루어지지 않는 법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자리를 늘 하나님의 자리로 대신 채워주옵소서. 그래서 우리는 해바라기가 태양을 바라보듯이 예수님의 죽으심만 바라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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