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6. 10:22

다윗의 처신 (사무엘상 27장 5-12절)

다윗의 처신

2009년 9월 6일                         본문 말씀: 사무엘상 27:5-12

(삼상 27:5, 개정)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바라건대 내가 당신께 은혜를 입었다면 지방 성읍 가운데 한 곳을 내게 주어 내가 살게 하소서 당신의 종이 어찌 당신과 함께 왕도에 살리이까 하니』
(삼상 27:6, 개정) 『아기스가 그 날에 시글락을 그에게 주었으므로 시글락이 오늘까지 유다 왕에게 속하니라』
(삼상 27:7, 개정)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산 날 수는 일 년 사 개월이었더라』
(삼상 27:8, 개정)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올라가서 그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과 아말렉 사람을 침노하였으니 그들은 옛적부터 술과 애굽 땅으로 지나가는 지방의 주민이라』
(삼상 27:9, 개정) 『다윗이 그 땅을 쳐서 남녀를 살려두지 아니하고 양과 소와 나귀와 낙타와 의복을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 아기스에게 이르매』
(삼상 27:10, 개정) 『아기스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누구를 침노하였느냐 하니 다윗이 이르되 유다 네겝과 여라무엘 사람의 네겝과 겐 사람의 네겝이니이다 하였더라』
(삼상 27:11, 개정) 『다윗이 그 남녀를 살려서 가드로 데려가지 아니한 것은 그의 생각에 그들이 우리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다윗이 행한 일이 이러하니라 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거주하는 동안에 이같이 행하는 습관이 있었다 할까 두려워함이었더라』
(삼상 27:12, 개정) 『아기스가 다윗을 믿고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심히 미움을 받게 되었으니 그는 영원히 내 부하가 되리라고 생각하니라』


이방나라에서의 다윗의 처신은 철저하게 세속적으로 보일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에 대한 일반인들의 평판이 철저하게 세속적으로 흐른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음에 대해서 일반인들은 언약과는 다른 방식의 안목으로 해석합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 자체가 비언약적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다윗의 몸에는 하나님이 주신 프로그램이 칭칭 감겨있습니다. 그 감긴 프로그램이 풀리게 되면서 다윗을 통해 하나님의 일은 하시게 됩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서 다윗은 보통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오해를 받게 됩니다. 이점은 예수님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흔히 예수님의 모든 일을 예수님의 자의에 의해서 하신 것처럼 여겨지지만 실은 예수님께서 요단강에 세례 받을 때, ‘하늘이 열리면서’ 성령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에게 임했습니다.

이로서 예수님의 지상 생애는 성령님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프로그램대로 진행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예수님의 일과 행위에 대해서 여기저시가 오해하고 질시하고 미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도 모르는 이단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 좋다’는 말을 들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칭찬한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구원해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오로지 아버지의 뜻을 그대로 펼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이 나오는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을 씹으려는 사람이나 나름대로 자신을 건전한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의 태도를 심하게 비난할 것입니다.

자기 한 몸 살려보려고 이스라엘의 적의 나라인 블레셋 나라에 빌어붙어서 아부하는 꼴로 전락한 다윗의 비겁한 처신에 대해서 사람들은 충분히 비난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비난의 태도 자체가 평소에 복음에 대해서 무지함을 유감없이 노출당하고 있는 겁니다.

즉 그들이 다윗의 몸을 칭칭 감고 있는 복음의 자유성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납득이 되는 상황만 골라서 그 상황을 건사한 역사로 꾸며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복음의 자유가 아니라 자신을 더욱더 우상화하는 작업에 불과합니다. 다윗은 결코 자신의 의로움이나 완전함을 견지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가지고 인간들이 납득못할 세계를 열어보이시고 전개하십니다. 예수님 일생이나 교회생활에서 엉터리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로 하여금 참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욕을 얻어먹는 식으로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다윗 같은 경우에 있어 기적이나 하나님의 일이란 세상 사람들의 들이대는 윤리와 도덕에 전혀 구애받음이 없이 수행됩니다. 이는 곧 자신이 선택한 인생을 사는 자가 아니라 자기에게 들이닥친 인생을 다윗은 사는 겁니다. 이 자유가 어디서 나왔느냐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자유가 주어진 그 원천을 향하여 자유는 되돌아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블레셋 땅 아기스 왕의 땅에 이루어집니다. 다윗은 적의 땅에 기거하면서 마치 이스라엘 땅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자기 본국에 쳐들어온 적군을 그냥 두고 보지 아니하고 과감하게 쳐서 제거하게 됩니다. 그런데 블레셋의 아기스왕은 다윗의 이러한 행동이 자기에 대해서 충성심을 더욱더 드러내기 위한 일로 봅니다.

아기스왕은 그것을 기대했고 다윗은 이런 아기스왕의 기대를 이용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판단하기를 다윗은 이스라엘로부터 미움을 받았기에 영원히 자기 나라의 종으로 묶이게 되었다고 단정짓습니다. 이러한 이방왕의 판단은, 선과 악에 준해서 판단한 것입니다. 즉 사람이란 사람들로부터 미움받으면 적으로 돌변한다는 원칙을 내세우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다윗은 사울왕의 공격을 피해 비록 블레셋 땅에 기거하지만 아말렉 민족을 제거해야 한다는 임무는 변함이 없이 다윗에게 떨어진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는데 있는 자신의 형편을 고려한 자유는 다윗에게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 간의 의리라든지 인간들 간의 정 같은 것 때문에 방해받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로서의 자유입니다. 즉 개인적인 자질 함양을 위하여 다윗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자신의 인격 수양이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비언약을 공격해야만 하고 진멸하고 저주하고 심판해야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이러한 다윗의 속임수와 배신 행위에 대해서  비언약쪽에서 비난할 입장이 못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도리어 다윗이 하는 그 자유로운 활동을 협조하라고 하나님께서 조성하신 환경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오해가 도리어 다윗에게 도움이 됩니다. 다윗을 안정하게 지켜줍니다. 여기서 진실이라든지, 정의로움을 가지고 그런 불신자들에게 다가갈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의 완벽함을 위한 의리란 곧 자신의 선악체계를 못버리겠다는 고집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지시를 거부하고 자신의 것으로만 버티려는 오만함이요 은혜에 대한 거역행위입니다. 다른 관점으로 휩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 너무 고려할 사항이 많아져버립니다.

이것저것 따지다가 아무 일도 못하고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남는 것은 자기 의로움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의로움은 아무 짝도 소용없는 겁니다. 무슨 인격이냐가 아니라 무엇을 향해 행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의 인격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이 지시가 떨어져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겁니다. 따라서 그 결과에 대해서 스스로의 책임으로 돌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도리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아말렉 사람을 한 사람도 살려두지 아니하고 다 죽여버렸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주장하기를, ‘다윗은 포악하다’는 나쁜 인상을 두루 퍼뜨릴 것을 우려해서입니다. ‘포악한 다윗’, 과연 이런 다윗의 성품이 예수님의 성품과 닮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피는 극단적인 경향을 띱니다. 지옥 아니면 천국, 천국 아니면 지옥입니다. 양 아니면 염소, 염소 아니면 양입니다.

두루두루 사람좋고 인간성 좋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성도의 갈 길이 아닙니다. 사정없이 하나님의 제시한 기준을 펼쳐야 합니다. 이로서 성도는 자기 일을 하는 자가 아니라 성령에 의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인생을 낭만적으로 보지 말고 하나님의 계획이 덮친채로 진행됨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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