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0. 11. 10:46

사울의 죽음 (사무엘상 31장 1- 6절)

사울의 죽음

2009년 10월 11일                          본문 말씀: 사무엘상 31:1-6

(삼상 31:1, 개정)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치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여 길보아 산에서 엎드러져 죽으니라』
(삼상 31:2, 개정)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의 아들들을 추격하여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니라』
(삼상 31:3, 개정) 『사울이 패전하매 활 쏘는 자가 따라잡으니 사울이 그 활 쏘는 자에게 중상을 입은지라』
(삼상 31:4, 개정) 『그가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그것으로 나를 찌르라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무기를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감히 행하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의 칼을 뽑아서 그 위에 엎드러지매』
(삼상 31:5, 개정) 『무기를 든 자가 사울이 죽음을 보고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그와 함께 죽으니라』
(삼상 31:6, 개정)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무기를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


구약 성경을 보면서 인간에게 주목하면 안됩니다. 그 사람들이 딛고 있는 땅을 봐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딛고 있는 땅을 ‘약속의 땅’이라고 합니다. ‘약속의 땅’이란 밑에서 끊임없이 ‘약속’이 계속 뿜어져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일종의 연극 무대라고 보면 됩니다. 즉 땅에서 뿜어져 나오는 원리와 그 위에서 사는 인간이 과연 합당한가 하는 점을 늘 점검하게 합니다.

원래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이 땅에서 패배가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 이스라엘이 패배합니다. 그것은 현 이스라엘이 이 땅의 원리와 안 맞았다는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약속의 땅은 결코 그 누구에게도 패배하지 않는 겁니다. 즉 이 약속의 땅이란 무대 위에서 누가 성공하든지 누가 실패하든지 그 어떤 경우라도 결국에는 약속의 땅 자체의 성공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는 겁니다.

이것을 가지고 ‘영적 전쟁’이라고 합니다. 영적 전쟁에는 필히 적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 적에 대한 개념이 우리 인간들은 모르게 됩니다. 왜 그런고 하니 인간은 인간 나름대로의 ‘자기 전쟁’을 치뤄낸다고 분주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딛고 있는 땅에서 무엇을 요구하는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편에 서 있다고 자부하지만 실은 하나님의 적이 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사람이란 하나님께 고맙다고 하면서 뭐든지 좋다고 싶으면 항상 자기 소유화 시켜버립니다. 즉 약속의 땅 자체에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원리를 버리고 하나님의 원리를 소지하고 소유하므로서 자신의 전쟁에서 자기 능력으로 자리잡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 자체가 약속의 원리와 배치되는 겁니다. 반대되는 성향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원리를 자기가 소유했다고 여기는 순간부터 그 인간은 하나님없이도 살 수 있는 존재로 변모됩니다. 곧 “나는 얼마나 잘난 존재로 나타내보이느냐”의 전쟁입니다. 자기 정체성과 관련된 전쟁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약속의 땅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이스라엘을 사수하려고 전쟁으로 나서는 것으로 마땅히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을 지켜주리라 여깁니다.

이것은 엄청난 오해입니다. 사람들은 영적 전쟁과 육적 전쟁을 구별을 못합니다. 하나님이 원리를 자신의 생존과 과시 원리와 일치시킵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해서 이 약속의 땅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생각 못합니다. 마치 신혼부부가 처음 사랑할 때는 단칸방에서 살아도 행복하다가도 막상 나중에 아파트 소유권 자체가 문제가 되어버립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인간의 소유가 되지를 못합니다. 계속해서 하나님됨을 보여주는 사람일 경우에만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에게 소유된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의 능력을 이용할 생각을 못합니다. 그리고 이런 인간이 되는 것은 인간의 육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약속의 땅에 전쟁을 일으키면서 ‘할례없는 민족’을 소위 할례 받았다는 이스라엘과 전쟁을 붙여줍니다.

이렇게 되니 자기 육체에 할례가 있다는 것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작용한다고 여긴 사울왕은 결국 약속의 땅에서 패배하여 결국 죽게 됩니다. 죽기 전에 사울을 주장합니다. “나는 여전히 할례 받은 자다. 따라서 할례없는 자에게 패배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바로 이런 정신머리가 곧 하나님에게 있어 적이 되는 겁니다.

블레셋 민족은 사무엘상에서 ‘할례없는 민족’의 대명사로 나오고 있습니다. ‘할례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손길이 닿이지 않은 민족이라는 말입니다. 쉽게 말해서 더러움이 그대로 묻어있는 족속이라는 겁니다. 변화가 일체 없이 태어난 그 성질과 속성을 그대로 가져가는 민족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 주변에 이스라엘이 있어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진정 할례의 의미를 아는 분은 오직 하나님 뿐입니다. 진정 거룩한 분은 하나님 뿐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 거룩을 자신이 소지할 수 있는 거룩으로 자부했던 사울왕은 하나님이 붙여준 전쟁으로 인하여 망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약속의 땅의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블레셋 나라를 이스라엘과 붙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와장창 깨어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할례는 육신적 할례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로마서 2:29에 보면, ‘마음의 할례’가 곧 ‘참 이스라엘’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할례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할례란 더러운 요소를 벗기는 의식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남성 생식기 끝을 잘라내므로서 더러운 인간을 깨끗하고 거룩한 인간을 바꾼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것이 무슨 말인지를 몰랐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모르기에 그런 상황에서 주어지는 모든 하나님의 지시를 낱낱이 오해하는 겁니다. 비록 인간들이 육신적인 할례를 행할 수는 있지만 마음의 할례는 이미 인간의 능력을 벗어나는 사항입니다.

따라서 육신의 할례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육신의 할례란 남자의 생식 기능으로 인해 태어나는 모든 인간은 다 더럽다는 말입니다. 즉 남자의 생식 기능없이 태어난 자식이 진정 거룩한 백성이요 거룩한 이스라엘이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에 거하게 하셔서 남자의 자식이 아닌 채로 태어나는 작업을 하시는 겁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남자 없이 ‘여자의 후손’에 속하기를 원합니다. ‘여자의 후손’은 오직 예수님 뿐입니다. 따라서 예수님 때문에 태어난 자로 하나님께서 만들어내십니다. 이 작업은 하나님께서 영적 전쟁을 통해서 확인케 합니다. 즉 과연 내가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인지 아닌지를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살면서 주변에서 영적 전쟁을 유발시키십니다.

즉 사울같은 자들이 드러나게 하는 것 가운데 “아, 나도 전에는 저런 식으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착각했지”라는 고백이 저절로 나오게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을 소유하므로서 마치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한 것처럼 여기게 만드는 그 모습이 자신이 옛날 십자가를 모를 때 나온 행세였음을 아는 겁니다.

빌립보서 3:18에 보면,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고 되어 있습니다.

세상에서 어리석게 보이는 그 십자가가 도리어 우리 자신을 구원하는 능력임을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혹은 인생을 살면서 수시로 유발되는 사태와 상황을 통해서 알게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영적 전쟁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승리자임을 분명히 하는 이 현실이 참된 현실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속에 계시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구원됨을 잊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사무엘상-2008/064강-삼상31장1-6(사울의죽음)-1sa091011.mp3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사무엘상-2008/064강-삼상31장1-6(사울의죽음)-1sa091011.wmv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사무엘상-2008/064강-삼상31장1-6(사울의죽음)-1sa091011.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