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23. 21:29

육의 판대기 vs 성령의 판대기 (마리아와 엘리사벳)

《 설교 요약 》                                                                                                                     2009년 11월 29 일

〈 지난 주 설교 요약 〉

인간들은 자신이 깨끗하다고 자부하고 있기 때문에 거룩한 하나님께서 자기 속까지 들어올 필요가 없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호세아의 저주스러운 세 자녀를 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은 누구나 더러운 존재입니다. 이 더러운 존재를 육에서 영으로 바꾸어주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약속과 말씀을 통해서 우리 속까지 들어오십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모든 것은 깡그리 거덜 나면서 우리의 것이 아니라 말씀의 것이 됩니다. 말씀이 작용하는 터전이 됩니다.
 

〈 이번 주 설교 요약 〉

누가복음 1:39-45                                                                                                              마리아와 엘리사벳

믿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말은, 기존에 있는 것이 다 날아가고 빼앗겨도 상관없는 입장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누가복음 11:13에 보면,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령을 주셨다는 말은 성령이 하시는 일과 방해되는 것은 모두 제거하시겠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육이 천국에 가려면 이러한 절차가 필요합니다. 죄악된 육을 가지고 그대로 천국에 갈 수 없으니 무슨 조치가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셔서 육을 위한 육이 아니라 자신을 구원하실 육에 대해서 찬양토록 하십니다. 성령이 오게 되면 사는 목표나 방향이 바뀝니다. 세상 것을 잊어버리고 하늘에 속한 것들을 원하게 됩니다. 자신이 소유할 것을 잊어버리고 자기조차 하나님의 뜻에 바쳐진 존재인 것을 알게 됩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에게 있어 성령의 오심이란 하나님을 이용해서 자기 생존을 꾀하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섬기고 봉사하기 위함입니다. 세상에 있지도 않는 현상이 그들에게 새로이 발생된 것은 세상에 있는 것들과 어떤 차이가 나는지를 세상에 알리기 위함입니다. 하늘의 복이란 세상에서 말하는 복과 다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복이란 실은 저주를 유발시키고 고민과 걱정과 염려와 근심과 두려움을 유발시킨 요인들만 잔득 쌓아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돈은 마치 발암물질과 같습니다. 모든 세포에 발암물질이 임하면 하나하나가 암세포로 전이됩니다. 이처럼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됩니다. 인간에게는 죄란 욕심입니다. 이 욕심이 요구하는 축복이란 실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축복이 아니라 핍박하는 요소로서 작용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