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13. 23:28

세상나라와 인간이 싫어하는 출생 (예수님의 출생)

12월 20일 주보요약 - 이근호

《 설교 요약 》                                    2009년 12월 20일

〈 지난 주 설교 요약 〉

죄사함이 없는 구원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버림받으신 것은, 그 어떤 인간도 죄씻어 달라고 하나님에게 요구할 권리나 입장이 되지 못함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구원이란 오로지 긍휼을 입을 사람에게만 해당됩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들의 행위로 죄씻음에 가담될 수 없고, 새로운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기억이 그 사람의 기억으로 대체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그동안 자신의 주체를 이루던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의 흐름이 되는 겁니다. 


〈 이번 주 설교 요약 〉

본문 : 누가복음 2:1-7                    제목 :  예수님의 출생

누가 태어난 것으로서 이 세상에 말이 되려면 세상의 주목을 받아야 합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태어났다가 쓸쓸히 주목받지 못하고 사라졌다면 그 사람들은 전혀 등장한 사람이 되지를 못합니다. 있으나마나 한 존재가 되는 겁니다. 본인이야 나름대로 한평생 살면서 보람을 가졌든지 말든지 그 사람은 이 세상에 없었던 사람으로 취급받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경우, 그분은 아무도 그분을 알아보지도 못하면서도 세상 모든 사람의 운명에 대해 결정권을 가진 분으로 등장했습니다. 이로서 세상 사람들은 나름대로 가치를 찾을 수 있는 자격이 박탈됩니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지 주변 사람들이 그 사람을 어떻게 보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즉 같이 이 땅에 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지목한 분의 출생으로 의해서 다른 자들의 출생 가치는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출생할 만한 출생인지 아니면 차라리 출생하지 말아야 될 자인지는 예수님이 결정하실 사항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출생을 외면할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튼튼한 벽으로 둘러싸여 아무 일이 지내왔던 인간 세상에 예수님의 출생으로 벽이 갈라지고 무너져 내립니다. 자칭 튼튼하다는 벽은 실은 세상 나라였으며 우리들은 그 나라를 무시하지 못하고 무서워했습니다. 사람들은 나라없이는 따로 보호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나라가 만약에 예수님을 싫어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면 어떠하겠습니까? 예수님의 나타나심은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함입니다. 물 속에 떨어진 한 방울의 기름으로서 예수님이 출생하신 것입니다. 이로서 세상 나라가 아무리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방해하고자 해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도리어 현 세상 나라의 성질만 자꾸만 폭로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