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0. 11. 10:37

당돌한 요셉 (마가복음 15장 42-47절)

당돌한 요셉

2009년 10월 11일                         본문 말씀: 마가복음 15:42-47

(막 15:42, 개역) 『이 날은 예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막 15:43, 개역)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귀한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막 15:44, 개역)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지 오래냐 묻고』
(막 15:45, 개역)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어주는지라』
(막 15:46, 개역) 『요셉이 세마포를 사고 예수를 내려다가 이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막 15:47, 개역)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아무도 심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이제 잊어도 될 자’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달랐습니다. 요셉은 자기 노선을 포기하고 예수님의 편에 섭니다. 이는 곧 세상으로부터 미움 받을 짓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셉은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자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는 사람들의 능력으로 이해되지 않고 항상 미움을 받을 세상인 것을 예수님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곧 심판이 벌써 시작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말은 범우주적 심판이 분명히 있음을 뜻합니다. 세상이 미워한 그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받아야 된다’는 말은 세상은 어차피 심판을 면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심판은 이제 사람들로부터 싫어버린 바 된 분에 의해서 실시됩니다. 더 이상 인간이나 세상을 두려워하거나 악마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5:22-23에 보면,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찾아와서 구원하신다는 것은 장차 있을 심판을 미리 구원받을 자에게 실시하는 겁니다. 곧 우리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나 예수님의 세계로 튀어나오도록 하는 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물 세례가 이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 세례는 입수→수장→건짐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이렇게 되고 되살아나면 그 세계는 곧 우리들의 세계가 아니라 예수님의 세계입니다. 성령 세례도 이런 절차를 밟습니다. 육으로 들어가서 영으로 나오게 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예수님을 살해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십자가 그 현장에 있었던 백부장이 보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해서 그러합니다. 백부장은 십자가 그 자체만으로 예수님이 메시아인 것을 알았습니다. 즉 모든 구원 개념은 이 세상 모든 지역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택한 백성, 택한 나라, 택한 사람들, 택한 장소에 의해서만 드러나는데 그곳이 바로 성전이요 성도요 제사지내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정기적으로 각종 흠없는 제물들이 이유도 없이 무조건 죽어나갔습니다.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제물이 예수님 자신의 몸으로 완성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서의 예수님의 존재 이유입니다. 이것은 백부장은 본 것입니다.

백부장의 이러한 고백은 더 이상 세상이 무섭지 않다는 말입ㄴ다. 비록 이 세상에서는 돈 벌수 있는 조건까지 제시하면서 그 조건에 맞추는 자에게만 돈이 돌아가는 그런 세상이지만 그런 세상이 예수님을 밀쳐버린 이상, 그래서 세상의 본질을 안 이상, 세상을 겁낼 이유는 없습니다.

마태복음 10:28에 보면,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 앞에 보면,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하는 요엡의 행동이 바로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두려움이 없는 노선을 형성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에 있어 요셉이라는 분은 예수님을 방치할 수 없을 분이라는 점을 알고는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의 과거를 전부 수습하려고 합니다. 과거에 남긴 그 말씀들이 결코 무효화 되지 않도록, 무용지물이 되지 않도록 인간적 방식을 통해서라도 간직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요셉의 방식과 성령님의 방식의 차이가 납니다. 요셉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인간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습니다. 성령님에게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가 의미없습니다. 단지 예수님께서 하신 일과 공로가 중요합니다.

요한복음 16:12-16에 보면,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신대“고 되어 있습니다.

즉 예수님을 앞장 세워 다루시는 성령님께서 이제 예수님의 것으로 우리를 다루어서 감히 상상치도 못했던 세상에 들어가게 해주신다는 겁니다. 즉 예수님께의 십자도 성령님에 의해서 감행되었고, 살아나심에 성령님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로마서 8:11에 보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성령님이 하시는 일은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이 전혀 천국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지 못함을 통보하고 그 이유까지 알려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 자체가 죽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이 죽음이 겁나서 피한다든지 두려워한다든지 자체가 전혀 주제 파악이 안 된 안목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성령은 그런 인간의 일과 무관하게 우리들의 안목을 열어주십니다. 성령이 오셨다는 것은 벌써 예수님은 지금 살아계신 분으로서 절대로 죽은 자의 분류로 떨어질 분이 아니라 도리어 인간이 애초부터 죽은 자로 분류되어 다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자꾸만 예수님을 죽은 자로 분류하고 싶어하는 것은 그분을 대하는 것이 버겹고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 만나기를 힘겨워합니까? 왜 도망치고 싶어합니까? 왜 즐겨 만나고 싶어하지를 않습니까? 그것은 본인들이 그 분 앞에서만 아무런 소용없는 존재로 발각되기 때문입니다.

죄를 짓는 것은 사람들이 자기 속에서 하나님의 성령의 작용으로, 말씀의 적용 작업으로 지속적으로 죄가 나온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서울 지하철 풍경을 보게 되면 방금 열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마구 계단을 통해 올라오게 되면 새로 타려고 계단 내려가는 사람들이 내려갈 틈이 없을 지경입니다. 이처럼 자신에게서 죄가 마구 올라오는데 거기에다 새로 죄를 추가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겁니다.

사람들이 죄짓는 이유는 자신이 여전히 착한 구석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물로 꽉찬 요강에 새삼 더 추가할 오물이 필요치 않듯이,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에 보내서 왜 우리가 더 이상 세상이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지를 알리는 식으로 성령께서 일하십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우리를 죄로 죽이시고 의인의 자격으로 살리시는 하나님의 동행을 느끼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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