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23. 21:19

마리아의 임신 (누가복음 1:26-38)

마리아의 임신

2009년 11월 22일         본문 말씀: 누가복음 1:26-38

(눅 1:26, 개역)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눅 1:27, 개역)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눅 1:28, 개역)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눅 1:29, 개역)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눅 1:30, 개역)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눅 1:31, 개역)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눅 1:32, 개역)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눅 1:33, 개역)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눅 1:34, 개역)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눅 1:35, 개역)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눅 1:36, 개역)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눅 1:37, 개역)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눅 1:38, 개역)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우리의 우리가 그동안 구축해놓은 세계가 따로 있습니다. 신문과 방송에서 매일같이 이야기하고 있고, 또한 우리네 직장에서 매일같이 대화하는 그런 단어들, 그런 용어들이 따로 있습니다. 바로 그런 것들로 인하여 오늘날 우리 자신이 구축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낯선 세계가 쳐들어옵니다.

그 낯선 세계는 다른 용어와 개념들도 쳐들어옵니다. 우리들이 전혀 관심없고 신경 안쓰는 그런 단어들이 쳐들어옵니다. 예수, 다윗의 위, 야곱,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 등등의 용어들은 우리네 평상시 생활에서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단어들이며 이런 말들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 일상에는 전혀 상관없이 보일성 싶습니다.

그런데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바로 이런 용어를 사용해야만 하는 세계를 전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마리아는 강력하게 저지합니다. 34절에 보면,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제게 그런 일이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라고 합니다. 즉 나하고는 상관없는 세계라는 겁니다.

이 말은 곧, “나는 그동안 내가 지켜온 세계나 꾸준히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냅니다. 이처럼 사람이 하나님과 만난다는 것은 곧 인간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힐 일들입니다. 인간은 쉽게 자신의 전부를 하나님께 내놓을 위인들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의 자존심과 위신을 고려하면서 평생을 살아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존심 속에는, 자기가 이해될만한 것을 골라서 자기 안에 차곡차곡 쌓아두어서 괜찮은 자아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처녀인 자신이 아기를 가진다는 것을 그동안의 상식에 의하면 상상도 못할 일이며 더나아가서 결코 자신의 위신과 체면이 다 망가지는 그런 일은 절대로 본인에게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즉 마리아를 비롯해서 인간들의 관심사는 결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는 말입니다. 독자적으로 딴 세계를 꾸미면서 그동안 살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인간에게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가지고 들이닥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수립할 수 있는 모든 인생을 통째로 들어내다 버립니다.

위신이고 체면이고 그런 것을 고려하지 않고 말씀을 앞장세워서 들이닥치십니다. 이것이 바로 육의 세계와 영의 세계의 만남에서의 특징입니다. 곱게 만나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바깥 세계를 겁냅니다. 자기만의 막을 쳐놓고 그 안에 들어살면서 행여 밖에서 일어나 무슨 사태가 자신이 곱게 살아온 인생을 와장창 다 뭉개버리지 않을까 늘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바깥 세계가 마리아의 허락없이 그냥 들이닥친 것입니다. 이것은 본디 하나님께서 원래 계획하신대로 추진된 결과입니다. 옛적에 하나님은 장막 안에 숨어계시면서 전 세계를 통솔하고 지배했습니다. 모세 때의 이야기입니다. 다른 민족들에게 있어 하나님은 저 하늘 높이 멀리 따로 떨어져계신 신이었습니다.

하지만 모세를 앞장 세우신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사림들 속에 함께 기거하시겠다고 모세에게 장막을 만들기를 지시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이제는 그 장막을 벗어버리고 직접 사람 몸 안에까지 들이닥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사람 몸 안으로 잡은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하시는 걸까요? 그것은 자기 백성들이 어떤 인간들인지를 본인들이 모르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법을 숙제하듯이 지키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이란 학원에서 기술 배워서 그것으로 천국문을 따내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보내주는 학원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육 속에 자신의 거주지를 삼지 아니하면 구원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육과 영의 만남에서 육은 자신의 육됨을 강력하게 부인하고 나서는 겁니다. 호세아 선지자의 경우를 보면, 그는 의도적으로 행실 나쁜 여인과 결혼했어 아기를 가지게 됩니다. 그 여인 사이에는 세 자녀가 태어납니다. 맏아들이 이름은 ‘이스르엘’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이른다는 뜻입니다. 둘째는 딸을 얻게 되었는데 이름이 로루하마입니다. 뜻은 ‘긍휼을 입지 못한 자’입니다.

셋째는 아들입니다. 이름은 ‘로암미’입니다. 뜻은 ‘내 백성이 아니다’입니다. 결국 세 자녀 모두다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아 당연함을 보여주는 자녀들입니다. 이는 곧 모든 인간의 육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저주의 대상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소위 말해서 ‘쓰레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전 세계를 불로 싸질러버리는 이유는 쓰레기이기 때문입니다. 저주받아도 할 말이 없는 자들입니다.

바로 이러한 더러운 자리에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리를 잡습니다. 그 육안까지 들어오십니다. 인간들의 강력한 저항을 받게 됩니다. 육다운 태도와 마주치게 됩니다. 즉 자신의 깨끗한데 왜 이 께끗한 나만의 소박한 인생을 하나님께서 망치려드느냐고 반발을 받게 됩니다. 17,8세 되는 나의 소녀는 매사가 조심스럽게 자기만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여자의 자궁이란 가장 비밀스러운 공간입니다. 그 자리만큼은 거룩하고 아름답고 깨끗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에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깨끗하다고 자부하다고 여기는 그 더러운 자리마저 말씀으로 점령하지 아니하면 그 인간은  저주스러운 존재로 그냥 사는 것이 됩니다. 육 자체가 영으로 변화되지 아니하면 결코 하나님 나라를 볼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뿐입니다. 한 종류는 하나님의 약속이 담겨있는 계열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이들 안에는 마리아의 경우처럼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약속의 말씀이 그 안에서 퍼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다른 한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냥 육 그대로 유지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법에 의해서 저주받으면서 결국에는 저주가 기다리는 곳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자들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성경이 과연 현실 그대로 맞냐”고! 그럴 때 “너희 자식들을 보아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느냐”고 말입니다. 더러운 자식, 하나님에 관심이 없는 자식을 낳은 그 부모도 역시 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자들이 살 수 있는 것은 오직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사는 수 밖에 없습니다. 저항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리아는 은혜를 임은 사람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이 쓰레기 임을 인정하고 말씀의 세계에 덮힌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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