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8. 8. 22:59

천국의 작은 자 (누가복음 7장 24-28절)

본문 : 누가복음 7장24-28절
제목 : 천국의 작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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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강-눅7장24-28(천국의작은자)-luk100808

천국의 작은 자

2010년 8월 8일                         

본문 말씀: 누가복음 7:24-28

(눅 7:24, 개역) 『요한의 보낸 자가 떠난 후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눅 7:25, 개역)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눅 7:26, 개역)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눅 7:27, 개역)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예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
(눅 7:28, 개역)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이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하시니』
(눅 7:29, 개역)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눅 7:30, 개역) 『오직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그 세례를 받지 아니한지라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


나타난 분은 세례 요한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세례 요한을 우리 인간으로 출생한 자의 한계선으로 정하고 말았습니다. 여자로 태어난 중에 세례 요한만큼 위대한 자가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대로 우리 모두는 세례 요한보다 위대하지 않는 자인 것을 수긍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말씀을 존중하면서 지키는 자의 바른 모습니다.

즉 모든 말씀을 대하면서 ‘왜 우리는 세례 요한보다 못하느냐?’ 그 이유를 재발견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로 주어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일단 세례 요한을 만나도록 주선하셨습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두 가지 노림수서 세례 요한을 보게 된다는 겁니다. 그것은 자신을 왕궁에 있는 자에 대한 부러움 인식을 가지고 세례 요한을 찾을 수도 있고 다른 하나는 헛되고 헛된 갈대같이 무의미한 것이 인생인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도 세례 요한을 찾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바로 이런 점이 인간의 한계성입니다.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는 겁니다. 마치 짚차 광고에서 극히 가파르게 경사진 곳을 가뿐하게 올라가는 화면을 보여주면서 따라해서는 안됩니다는 주의 문구를 다는 것처럼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도 세례 요한을 따라잡을 수가 없는 겁니다.
기껏해야 왕궁에 사는 것을 선망하는 태도나 혹은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자포자기하는 식으로 자신의 사명을 내팽기치는 정도일 것입니다. 왕궁이란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곳입니다. 인간이란 태어나면서 뭐든지 주변의 것들과 힘을 자기쪽으로 집중시키므로서 서서히 ‘자신’에 대해 감을 잡습니다. 내가 누구이며 어떤 존재냐 하는 것은 그동안 힘을 끌어당겨 자기에게도 집중화 시키는 작업을 통해 파악하고자 하는 겁니다.

그것에 실패했다고 여기면 무의미하게 바람이 흔들거리며 존재하는 갈대처럼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의 삶은 갈대도 아니요 왕궁의 삶도 아닙니다. 즉 집중해서 비로소 자아됨을 갖추는 삶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망가므로서 자기 뒷 쪽에 계시는 분을 증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의 삶을 그렇게 평가하시는 겁니다. “그는 나를 증거하기 위해 나보다 앞서 세상에 나타나야 할 위대한 선지자다”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세례 요한은 출생부터 이미 예수님과 연결되어진 삶을 살기 위해 이 세상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이 연결은 인간쪽으로 시도해서 맺을 수 있는 연결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을 통해서 예수님과 접선을 시도하고자 해도 세례 요한의 자리에 짚차를 타고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힘차게 가속을 해도 결국 차가 뒤집혀서 자기 쪽으로 넘어올 뿐입니다. 처음부터 인간은 자기 집중화에서 벗어나는 살 인물들이 못됩니다. 그렇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세례 요한이 보는 세상과 인간이 세례 요한을 보는 관점의 차이가 보다 쉽게 말씀드리기 위해서는 사도 바울의 경우를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본인의 자리를 십자가 안이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6:14에 보면,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사람의 자리란 이미 시간이 멈춰져 있습니다. 인간들은 힘의 집중화를 위하여 평생을 돌아가니면서 여기 저기서 힘을 모으지만 그런 인생은 어떻게 살아도 망하는 인생입니다. 반면에 사도 바울의 자리인 십자가 안의 자리도 역시 시간이 멈춰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 자리는 시작과 끝을 한꺼번에 다 아는 자리입니다.

창세기를 알고 요한계시록을 아는 자리입니다. 그 안에서 아무리 숱한 변화가 있다 할지라도 십자가 안이라는 자리는 요지부동입니다. 새삼 힘을 더 끌어모을 필요조차 없는 세계입니다. 그 세계. 즉 그 자리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기뻐시게 하는 원리’를 가동시시킵니다.

그것이 바로 히브리서 11:6에 나오는 말씀인,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뻐시게 못한다”는 원리입니다. 이 말씀은 인간이 자기를 기쁘게 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을 기뻐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하나님의 기뻐시게 하는 것, 외에는 일체 다른 것을 고려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즉 인간이 내세에 행복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어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기를 기쁘게 하는 일이지 하나님을 기뻐시게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 것으로 구원되는 것이 천세례 요한의 댐을 넘어서 천국의 소자가 되는 길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꼼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나의 기쁨을 근원적으로 포기하지 못하겠다는 심정을 전제로 한 태도입니다. 하나님을 기뻐시게 한다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인간들의 집중력을 대항해서 하나님께서는 일방적으로 강탈하시는 식으로 진행합니다. 사람들은 태어나면서 집중력을 발휘해서 자기만의 자리와 터전을 닦는 것이 본성이 되어있습니다.

이 본성을 하나님께서는 강타하시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래야지만 ‘인간 자신이 기뻐하는 것을 허용시키지 않게’ 하시겠다는 뜻이 관철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육신이 남아있는데 그 육신이 기뻐하는 일을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당하듯이 빼앗기는 가운데 그 빈 여백에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어떤 것인지가 드러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수립한 자아상을 뭉개시키면서 그 뭉개진 영토만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인 것을 깨닫게 하시는 겁니다. 우리 인간이 도무지 격정한다는 게 말이 안됩니다. 걱정할 권리가 우리 인간에게는 아에 없는 겁니다. 마지막 죽을 때가 되어 더 이상 기대할 육신마저 소멸된다면 지금까지 그토록 죽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게 됩니다.

인간이 살아있으면서 하는 일이 집중, 곧 힘의 집중, 생존력의 집중에 있다면, 하나님의 일은 파괴와 소멸과 해체와 무너짐입니다. 하나님이 무너뜨리는 하늘은 벌써 곧 무너질 양상으로 우리 머리 위에 가까이 와 있습니다. 광야의 스산한 바람이 불면서 우리는 세례 요한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진정한 천국의 소자란 바로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를 배척하고 어린아이에게 일방적으로 이 소식을 전하는 예수님에게 달려 있는 문제입니다. 즉 천국의 작은 자는 예수님의 작품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시게 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인 것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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