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7. 4. 13:02

나무와 열매 (누가복음 6장 43-45절)

본문 : 누가복음 6장43-45절
제목 : 나무와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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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4강-눅6장43-45(나무와열매)-luk100704

나무와 열매

2010년 7월 6일                           

본문 말씀: 누가복음 6:43-45

(눅 6:43, 개역)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눅 6:44, 개역)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눅 6:45, 개역)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어떤 가정에 한 아이가 태어납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의 양육을 받아 학교에 다니고 친구들과도 어울리면서 그저 평범하게 살아갑니다. 자 이 사람이 자기 뿌리에 대해서 “나는 무화과 나무일까 나무 포도나무일까?”를 생각할 여유나 마음이 있겠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즉 자신의 근원을 돌아볼 기회를 갖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설 때에 과연 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무이냐 아니냐를 생각할 것입니다. 교회란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가 내보이는 곳입니다. 따라서 가시나무나 찔레들은 버틸 수 없는 곳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인류 최초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이기를 요구받은 이스라엘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저주가 삭제된 뿌리에서 나무가 자라 열매를 맺게 되면 그 열매는 저주받지 않는 열매가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해서 열매를 얻기를 고대하셨습니다. 무화과 열매와 포도를 얻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그 나무가 가시나무요 찔레가 되었습니다. 이런 나무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내지를 못하는 나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뿌리를 다시 돌아보기를 위하여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즉 겉멋으로 열매를 억지로 맺었다고 우기는 것을 인정치 못하겠다는 겁니다. 나무 자체가 달라지기를 원하십니다. 참된 무화과 나무, 참된 포도나무는 하나님께서 친히 심어신 나무이어야 합니다.

그 나라는 하나님이 친히 심으신 나라라는 겁니다. 포도나무와 무화과 나무를 심었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 24:1-3에 보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유다 방백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긴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전 앞에 놓인 무화과 두 광주리로 내게 보이셨는데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있고 한 광주리에는 악하여 먹을 수 없는 극히 악한 무화과가 있더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무화과이온데 그 좋은 무화과는 극히 좋고 그 악한 것은 극히 악하여 먹을 수 없게 악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5:1-7에 보면,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나의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혔도다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 판단하라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 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 것을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케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으로 황무케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질려와 형극이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을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말라 하리라 하셨으니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가지고 ‘하나님의 속성을 보여주는 열매’라는 입장에서 보십니다. 즉 요즈음 사람들에게는 기이하게 들리는 말이겠지만, 인간이란 실은 열매에 불과합니다. 처음부터 하나님께서는 ‘열매’로서 인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생명나무에 합당한 그 열매이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선악과 나무 열매를 따먹음으로 인하여 저주의 열매로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은 후에, 인간들은 환상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곧 자신들은 열매가 아니라는 겁니다. 자신들로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하나님 입장에서 이 인간들이 결코 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어주는 열매에 불과함을 보일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창세기 4장에 넘어가서, 가인이라는 자가 저질은 살인이 결코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마음과 각오를 다진다해서 안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보입니다. 즉 인간은 외부의 힘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휘돌리게 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이런 저런 유혹이 오면, 유혹이 오기 전에는 마치 자신을 건전한 존재로 간주했다가 막상 유혹이 덮치면 그런 지난날의 각오는 순식간에 와르르 허물어지고 만다는 겁니다.

이것은 인간이 아무리 성경을 본들, 그것으로 자신을 단독자로 정립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겁니다. 성경을 지키고 아니지키고가 문제가 아니라 단독자로 계속 행세하겠다는 그 태도가 곧 악마의 힘에 여전히 붙잡혀 있는 상태입니다. 성경의 그 어느 한 구절이라도 인간은 지킬 수 없습니다.

따라서 왜 나라는 인간이 성경 말씀을 지키고 싶어도 지키지 못하는가 하는 것은 그런 절망 가운데 성경을 다시 봐야 합니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됩니다 즉 “인간이란 열매에 불과하다. 스스로 단독적으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 준비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도대체 나라는 이 열매의 바탕은 어떤 힘에서 나온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운명을 저주스러운 운명으로 돌려버렸습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을 대표자로서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선악과라는 열매 자체가 지속적으로 저주를 유발시키는 저주의 열매였습니다.

그 어떤 인간도 이 저주스러운 열매라는 운명에서 벗어나는 자는 아무도 앖습니다. 이 운명 안에 인간은 자신을 단독자로 행세하면서 양적으로 세상을 보게 됩니다. 즉 “누가 누가 나보다 더 센가? 아니면 누구 누가 나보다 더 훌륭한가?”를 놓고 단독자와 단독자 끼리 비교와 경쟁에 돌입하게 됩니다. 이것은 곧 권력과 힘을 끌어모아 ‘나’라는 단독자를 계속해서 끌고 가겠다는 심보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에게 찾아오시면서 질적인 변화를 안겨줍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찾아오시면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단독적으로 사마리아 여인의 인간됨됨이에 대해서 전혀 신경쓰시지 않겠다는 겁니다. 이러나 저래나 저주받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은 인간을 개별적으로 상대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인간이 배속되어 있는 배후의 힘을 겨냥하신 조치를 취하십니다. 즉 악마입니다. 악마가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일방적인 건져 주심의 은혜’입니다. 법과 상관없이 일방적 사랑의 법으로만 자신의 공로를 근거로 죄인을 구원에 내는 것을 제일 무서워합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란 ‘하나님의 피’로 세운 곳입니다. 따라서 모든 세상적인 차이성과 구별성은 모조리 인정받지 못합니다. 마치 긴 유리대롱을 물 수조에 담그면 그 우리대롱에 물의 수치가 올라가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들은 유리대롱으로 삼아서 예수님의 십자가 피만 있는 수조에 꽂아버립니다.

여기서 발생되는 것이 성령의 열매입니다. 온유와 화평과 양선과 형제 우애 같은 것입니다. 거기에 비해서 성령을 받지 못한 자는 자신의 단독적인 자세를 유지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오는 열매는 바로 육의 열매, 천국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열매가 맺히게 되어 있습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고 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단독자로서 버티기 위해 권력을 끌어모으면서 발생되는 열매들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게 하시는 성령의 열매로서 존재해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성령의 표면이 되게 해주시고, 성령이 외부로 발산되는 뽀로지가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의 피만 증거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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