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 14. 17:12

내게로 돌아오지 않음 (사무엘 하 12:15-23)

내게로 돌아오지 않음

2010년 2월 14일                      본문 말씀: 사무엘 하 12:15-23

(삼하 12:15, 개역)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우리아의 처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앓는지라』
(삼하 12:16, 개역)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삼하 12:17, 개역) 『그 집의 늙은 자들이 곁에 이르러 다윗을 일으키려 하되 왕이 듣지 아니하고 저희로 더불어 먹지도 아니하더라』
(삼하 12:18, 개역) 『이레만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 그러나 다윗의 신복들이 아이의 죽은 것을 왕에게 고하기를 두려워하니 이는 저희가 말하기를 아이가 살았을 때에 우리가 말하여도 왕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셨나니 어떻게 그 아이의 죽은 것을 고할 수 있으랴 왕이 훼상하시리로다』
(삼하 12:19, 개역) 『다윗이 그 신복들의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그 아이가 죽은 줄을 깨닫고 그 신복들에게 묻되 아이가 죽었느냐 대답하되 죽었나이다』
(삼하 12:20, 개역)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궁으로 돌아와서 명하여 음식을 그 앞에 베풀게 하고 먹은지라』
(삼하 12:21, 개역) 『신복들이 왕께 묻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어찜이니이까』
(삼하 12:22, 개역) 『가로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어니와』
(삼하 12:23, 개역) 『시방은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서 중심 이동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그로 하여금 중심 이동시킨 것입니다. 매사를 자기 중심적으로 끌어당기는 식이 되었다가 그는 자신의 죄가 드러나는 그 지점으로 자신이 끌려가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인간들의 모든 행위는 항상 자기 중심적으로 구성되는 자기 역사입니다.

인간이 남의 역사를 안다는 것을 거짓말입니다. 인간은 자기 역사 밖에 모릅니다. 자기 역사 밖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화투를 쳐보면 같은 그림끼리 모아드려서 그것을 점수를 쌓게 됩니다. 이와마찬가지로 인간들은 자기 마음에 드는 사건들만 짝을 이루어 자기 역사 속으로 끌어당깁니다. 이렇게 되면 자기 마음에 합하지 않는 사건을 도태됩니다. 

인간이 하나님 버리기는 참으로 쉽습니다. 자신의 죄를 지적하는 사건을 자기 역사 속에 들여놓지 않고 외면하면 그만입니다. 즉 십자가 사건에서 눈 돌려버리면 나머지 모든 역사는 대단히 우수한 역사가 되어 자신이 영광받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이 아이가 아플 때 간절히 기도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기도가 자기 소원되는 응답되는 순간, 자신의 나머지 역사도 하나님에게 우수한 역사라고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기존에 깔아놓은 역사가 우수한 역사인지 나쁜 역사인지는 그 역사를 채우기 위한 자기 노력에 하나님이 수긍해주시고 협조하면 나머지 역사의 노선도 하나님으로부터 긍정적인 역사가 될 것이라고 간주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착실하게 자기만의 역사를 따로 다듬어나갈 수 있다고 믿고 싶은 것입니다. 그 역사 안의 모든 것은 그동안 자신이 애쓰고, 검약하고, 고생스럽게 일굴어놓은 업적들로 채워지게 됩니다. 그런 것들로 자기 주변을 쌓아놓고서 그 안에서 자신은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역사를 완료된 것으로 간주하시지 않고 도리어 문제거리가 도출시키는 물음의 대상으로 보십니다. 즉 인간의 짜놓은 역사 그 자체가 왜 정죄받을 만한 역사인 것으로 끄집어내는 바탕으로 쓰여진다는 말입니다. 우리 역사가 완료되는 것은 우리 안에 주님의 사건이 개입되는 순간입니다.

그 개입의 사건을 하나님은 다윗에게 ‘죽음의 사건’의 양상으로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리고 그 죽음의 원인자로서 다윗과 연결시켜놓으시는 겁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솔로몬과 다윗 사이에 난 자식을 금방 죽이시지 않습니다. 시름시름 앓게 하십니다. 그래놓고서 다윗으로 하여금 발작을 일으키게 유도하십니다.

다윗은 아이가 아프다는 소리를 듣고 가만있지를 못합니다. 왜냐하면 건전하고 고상하고 우수하고 훌륭하고 거룩해보이는 사건과 사건의 연결만이 자신이 용납되는 자기 역사 구성요소로 적절하다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기 역사의 산물인 아이가 아프다는 소식을 접하고 난 뒤에 그는 자기 나름대로 거룩하고 고상하고 우수해보이는 행위로서 자기 역사의 흠을 제거하려고 시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급기야 그 아이를 7일만에 죽게 하십니다. 이 사실도 모르는채 다윗은 열심히 금식과 기도를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재미있습니다. 그들 눈 앞에 보이는 다윗의 처신은 평소에 자신들이 자기만의 괜찮은 역사를 만드는 방법과 일치됨을 발견하고 다윗의 행위를 예상들 하고 있었습니다.

즉 아이가 아플 때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평소에 인간들이라면 누구나 하는 짓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놀랄 일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아이가 죽고 난 뒤에 다윗의 태도가 일식간에 돌변해서 마치 아이가 안 죽은 양 일상적인 생활에 곧바로 이어가더라는 말입니다. 

주변사람들이 오해는 이런 것입니다. 다윗이 기도하는 심정이 이러하다는 겁니다. “하나님, 저 아이는 제 아이입니다. 저 아이가 아픈 것은 곧 저의 죄 때문이오니 저의 간절한 기도와 금식하는 이 거룩한 행위를 어여삐 보셔서 저 아이를 살려주세요. 만약에 정 살지 못하고 죽는다 할지라도 저의 이 겸비한 기도와 금식을 멈추지 않고 이런 착한 일을 계속 할렵니다”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주변 사람들은 다윗의 행위와 평소의 자기 행위와 일치되는 면이 있다고 보고, 아이의 죽고 사는 일과 상관없이 금식과 기도에 열심내는 이 착하디 착한 경건성 하나는 꾸준히 이어나가서 의인으로 평가받는 긍정적인 면을 챙기는 기회가 된다고 본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들의 예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이참에 아예 중심이동을 실시한 것입니다. 즉 역사의 중심이 자기가 아니라 자기 죄로 인하여 죽어야했던 그 아이에게로 옮겨가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래야지만 자신이 더 이상 자기 중심적으로 착한 자라는 인생을 영원히 벗어내고 지워버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즉 영원히 자신이 악한 자로 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아이를 위하여 기도한 것은 혹시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내가 나 중심적인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을 허용해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와 금식과 상관없이 아이를 죽이는 것을 보고서는 하나님은 다윗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을 통째로 하나님의 ‘자기 역사화’, ‘하나님의 자기 계시화’ 작업의 요소로 집어넣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그는 나에게 돌아오지 않으나 나는 지금 그에게 가고 있는 중이다”고 말입니다. 즉 우리 밑에 깔려있는 것은 성도로 하여금 성도의 죄로 인해 죽어야만 했던 그 십자가의 지점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끌고 가십니다. 이 끌고 가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간증거리가 되는 겁니다.

즉 자기만의 역사를 고수하다가 여지없이 박살나 버린 그 역사를 십자가 사건과 연결시키는 것만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바른 계시해석입니다. 이런 해석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고른판으로 유지되는 우리의 역사 위에 균열과 해체되는 사태를 유발시킵니다. 그러면 우리는 심지 당황하게 될 것입니다. 이 와중에서 우리는 우리가 죄인임을 발각시킨 그 십자가 사건을 다시 보게 되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역사란 없고 전부 말씀의 역사임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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