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2. 10. 23:05

거짓 선지자 (예레미야 14:13-18)

거짓 선지자

2010년 2월 10일                     본문 말씀: 예레미야 14:13-18

(렘 14:10, 개역)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 발을 금하지 아니하므로 나 여호와가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고 그 죄를 벌하리라 하시고』
(렘 14:11, 개역)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
(렘 14:12, 개역)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멸하리라』
(렘 14:13, 개역) 『이에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칼을 보지 아니하겠고 기근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이곳에서 너희에게 확실한 평강을 주시리라 하나이다』
(렘 14:14, 개역)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도다』
(렘 14:15, 개역) 『그러므로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내 이름으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칼과 기근이 이 땅에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들에 대하여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그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요』
(렘 14:16, 개역) 『그들의 예언을 받은 백성은 기근과 칼로 인하여 예루살렘 거리에 던짐을 입을 것인즉 그들을 장사할 자가 없을 것이요 그 아내와 그 아들과 그 딸도 그렇게 되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악을 그 위에 부음이니라』
(렘 14:17, 개역) 『너는 이 말로 그들에게 이르라 내 눈이 밤낮으로 끊치지 아니하고 눈물을 흘리리니 이는 처녀 딸 내 백성이 큰 파멸, 중한 창상을 인하여 망함이라』
(렘 14:18, 개역) 『내가 들에 나간즉 칼에 죽은 자요 내가 성에 들어간즉 기근으로 병든 자며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다 땅에 두루 다니며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도다』


사람들은 일상의 생활에서 자신이 ‘기뻤다’, ‘즐거웠다’, ‘슬펐다’는 감정이 우선되어서 살아가게 됩니다. 자기 주변에 무슨 일이 벌어져도 자신이 즐거우면 문제없는 것이고, 자기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본인이 슬프면 문제 있는 세상이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관심사는 그것이 아닙니다. 참된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분하라는 겁니다.

이런 요구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면 사람들은 자기 관심사를 비켜가는 문제이기에 짜증부터 먼저 내게 됩니다. “하나님, 우리보고 거짓 선지자를 조심하라는 말씀하지 마시고 아예 거짓 선지자들이 발생되지 않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임무가 아닙니까?”라는 식으로 반문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참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분하시겠다는 것은 그것을 구분할 수 있는 역량이 인간에게 있다는 말이 아니라 도리어 없다는 말씀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거짓 선지자들의 멸망과 더불어 기존 백성들도 함께 망하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그 심보가 곧 멸망당할 거짓 선지자의 심보이기에 같이 상호 소통하고 한 통속이 되어 있다는 현실을 분명히 밝혀주십니다. 

이런 소식을 전하기 위해 참 선지자인 예레미야가 투입됩니다. 그럴 때, 거짓 선지자들이 이런 소식을 전하는 예레미야보고 뭐라고 말을 할까요? 이렇게 모함할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을 미혹하는 예레미야라는 거짓 선지자가 나타났습니다. 여러분은 그 선지자의 말을 믿지 마시고 주의해야 합니다”라고 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동조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에게는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조차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인간들은 자신들이 정상적인 인간으로서 정상적인 삶을 산다고 우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참선지자이신 예레미야를 보내신 이유에 대해서는 장차 오실 예수님의 등장과 관련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5:22에 보면,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알려주신 바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죄 아닌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자가 자신들의 모든 일에 대해서 “나는 죄 없음”을 우기는 식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나는 죄 있음”을 말할 수 있는 인간은 애당초 없습니다. 즉 예수님에 대해서 생래적으로 우호적으로 대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는 말입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님에 대해서 우호적으로 다가설 수 없으며, 성령이 임하면 필히 자신이 죄인이라는 점을 아는 상태에서 예수님을 대하게 됩니다.

시편 51:8-11에 보면,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고 되어 있습니다. 즉 자력으로 자신 속에 있는 죄의 힘으로 하나님 쪽으로 돌이킬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 호소할 수 있는 것은, ‘주께서 꺽어신 뼈’ 때문입니다. 즉 다윗은 율법의 중심에 제사법을 놓아지는 이유를 이제사 알게 됩니다. 그것도 자신의 죄가 하나님에 의해서 발각당한 경우를 통해서 말입니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나 백성들을 대하기에 민망해서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우리아 가족에서 미안해서가 아닙니다.

그는 비로소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마주 대하게 됩니다. 그것도 날 때부터 죄인이라는 자격으로 말입니다. 그동안 그는 제사는 드렸지만 왜 하나님께서 뼈를 꺾도록 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도리어 제사를 제 때에 드리는 자신의 행위에 의해서 정당성을 부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제사 행위가 자신을 진정 하나님 앞에 세우게 한 것이 아니라 자기 쪽에서 자신이 죄인이었음을 말해주는 사태가 일어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을 죄인으로 간주할 만한 죄를 지을 수 없는 존재라는 점입니다. 아무리 평소에 죄를 많이 지어도 인간은 그럴 때마다 자기를 변호하는 죄를 짓게 마련이지 결코 자신이 죄인이라고 단정 지을 만한 죄는 따로 없는 겁니다. 즉 “비록 지금은 죄 짓지만 마음만 먹으면 안 지을 수도 있는 것이 나”라는 인식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이 하는 모든 것이 죄이기에 그런 죄 중에서 자신이 죄인이라고 단정 지을 만한 죄를 따로 구분해서 지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인 것이 드러나는 경우는, 하나님 쪽에서 오셔서, 인간이 지켰다고 우기는 그 율법을 친히 다 이루시는 경우가 일어나야만 합니다.

평소에 다윗은 율법을 나름대로 준수한다고 자부했습니다. 율법 중심부에 있는 제사법에 대해서 다윗은 꾸준히 정기적으로 참여해서 준수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나단 선지자를 만나고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는 제사나 번제가 아니라 자신의 상한 심령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주께서 꺾으신 뼈’로 인하여 다윗은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될 존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자기를 떠나지 않기를 말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해야 하는 일은 참된 선지자를 “저 사람은 거짓 선지자다”라고 대중들을 현혹시키는 일입니다. 이렇게 해서 대중들로 하여금 참을 거짓으로, 거짓을 참으로 뒤바꾸어 이해하게 해서 비로소 참된 선지자가 그들 가운데서 죽음을 맞이하는 원칙을 견지하시는 겁니다.

참된 선지자가 사람들로부터 밉상을 받을 때 비로소, 마태복음 11:25-26의 말씀의 성취성이 드러납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여기서 ‘숨기시고’는 단어가 나옵니다. 즉 ‘숨긴 상태에서 드러내시는 것’을 이해한 자만이 이미 드러내심과 관련된 성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거짓 선지자들을 참된 선지자라고 오해했다가 하나님의 찾아오심에 의해서 그동안 몰랐던 참된 선지자의 가치를 알게 된 그 과정을 통해서 본인이 비로소 죄인이었다는 알게 된 것이다.

십자가 복음은 인간의 지혜로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성도들이 세상으로부터 배척받는 것이 당연한 겁니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 오늘날 성도를 ‘꺾으신 뼈’로 사용하시는 말씀의 완성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지혜로 우리가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나타내심을 능력으로 구원됨을 알고 즐거워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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