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0. 11. 16:10

나를 잊게 하는 부활 (부활의 목격자)


나를 잊게 하는 부활 (사랑과의 사귐 = 늘 용서 뿐임의 증식) 부활의 목격자


《 설교 요약 》                                                                                                                2009년 10월 18일

〈 지난 주 설교 요약 〉

요셉은 자기를 위한 인생을 포기했습니다. 예수님 노선에 가담을 합니다. 구원이란 미리 심판받아 심판에서 면제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리 심판당한 자에게만 영적 세계에 진입하게 됩니다. 거기에는 예수님의 이야기만 있지 우리 자신의 스토리는 없습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앞장 세워서 우리의 주제 파악을 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미 죄로 가득찼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의인으로 분류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공로입니다.


〈이번 주 설교 요약 〉

마가복음 16:1-7                                                                                                                부활의 목격자

부활을 목격한다고 해서 부활 속에 들어간 사람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본 것이란 그냥 본 것에 불과합니다. 나중에 안 보이면 전에 본 것을 무효가 되어 버리고 기껏 지나간 한 때의 추억으로 남다가 어느새 망각됩니다. 사람이란 결국 남아있는 것은 자기 몸 뿐입니다. 스쳐지나간 모든 것, 교회 다니면서 충성, 봉사한 모든 것, 이런 것들은 한때 열중했던 오락이요 자기 즐거움을 위해 참여했던 게임에 불과합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자신이 그야말로 썩어질 몸만 갖고 있는지 아니면 어느 세력 안에 사로잡혀 있는지 여부입니다. 즉 홀로 사는지 아니면 정말 부활하신 예수님과 더불어 사는지 여부입니다. 부활이란 세력이요 힘입니다. 나보다 더 센 힘입니다. 나를 주도하고 나를 지배하고 나를 종으로 부리는 힘입니다. 따라서 부활 안에서 사는 사람의 특징은 자신이 결정대로 매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늘 확인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늘 타인에게 전하게 됩니다. 여기서 “나는 보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단지 과거 한 번만 본 것이 아니라 매일같이 접하고, 대하고, 대화하고, 지시받고, 인도받고, 도움받고 살고 있음을 증거하는 겁니다. 이것은 ‘나의 결정’. ‘나의 판단’, ‘나의 선택’, ‘나의 계획’, ‘나의 애씀’, ‘나의 인도함’이 전혀 먹혀들지 않게 된다는 사실이 도리어 감사로 이어집니다. ‘나의 상상’, ‘나의 소망’, ‘나의 희망’도 매일같이 박살나고 무시당한다는 사실을 예수님의 부활하심과 연결시켜 보는 겁니다. “그 분이 살아계시다”는 사실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잊게 합니다. 그 분의 살아계심이 나의 살아계심보다 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에게 우리에게 찾아오심은 ‘나의 살아있음’이 ‘예수님 살아있음’보다 중요하지 않음을 일깨워주기 위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