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13. 09:06

유대인의 왕 (마가복음 15장 12-20절)

유대인의 왕

2009년 9월 13일                             본문 말씀: 마가복음 15:16-20            

(막 15:16, 개정)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막 15:17, 개정)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막 15:18, 개정) 『예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막 15:19, 개정)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막 15:20, 개정)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사람들은 세 번씩으로 확고히 예수님이 죽기를 원했습니다. 예수없는 구원의 틀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미 수립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살아있다는사실에 출발점으로 해서 살아계신 하나님과 만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십자가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본격적으로 십자가를 가지고 천국과 지옥을 가름하는 기준으로 사용하시려고 하십니다. 갈라디아서 3:1에 보면, “십자가가 눈 앞에 보이는데 누가 너희들을 꾀더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십자가 사건이 지난 간 한 때의 사건이 아니라 세상을 아예 끝장내는 영원한 기준으로 삼아버린 겁니다.

즉 사람들의 본심을 까발리는데 이것보다 더 멋진 사건이 또 없는 겁니다. 사람들이 엉터리로 상상한 거짓 하나님과 그 섬김의 헛됨을 지적하는데 이것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세상을 말하고 하나님을 말하고 인간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왜 인간들이 예수님을 십자가 못박아 제거하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인간들이 자기 나름대로 현실을 읽는 계시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자기를 위한 계시입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일만이 현실이요 계시가 되고 말씀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즉 “어쨌든 내가 여기 살아있잖아”라고 말합니다. “내가 살이 있다는 이 사실을 도저히 내가 부인하지 못하겠다”는 겁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예수님 이야기하면 성경을 덮고 외면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나에게 나만이 가장 가까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해서 예수님 중심의 계시말고 나 중심이 계시를 우리가 따로 만들면서 살아갑니다. 경찰서에서 경찰관이 범인을 취조합니다. “왜 죽였어?” “술김에” 이것이 보통 사람들이 평소에 내뱉는 계시요, 말씀입니다. 만약이 진정 성도라면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내가 살아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살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내가 살아있으면 하나님은 없어야 하고, 하나님이 살아 있다면 우리는 죽은 존재가 되어서 이래사나 저래사나 의미없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바입니다.

고린도후서 5:14에 보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십자가를 이해하는데 있어 살아있다고 여기는 우리의 자리에서 십자가를 보는 것은 모두 거짓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그 십자가 자리에 서서 다시 전에 내가 서 있던 자리를 보게 되면 우리들은 확실한 산 자가 아니라 죽은 자가 되는 겁니다. 내가 죽은 자로 보인다면 이는 곧 이 세상 전부가 죽음의 자리라는 것도 아울러 보이게 되고, 세상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이 죽음의 바다에서 파고가 높아지고 낮아지는 변화일 뿐이라는 것도 알게 딥니다.

하나님은 교회라는 단체를 가지고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안에서 사람을 상대하십니다. 그런데 그 말씀 안에는 바로 십자가 사건이 중앙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천국을 구상하면서 자기 즐거움으로 가득찬 공원같은 것을 연상입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천국은 항상 중심에 ‘어린양’이 계십니다.

이 ‘어린양’이라는 것을 일찍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죽임을 당한 사건을 품고 있는 그런 주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에게만 해당됩니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계 21:27)

다시는 저주가 없는 풍성한 생명나무도 어린양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그 강에서만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1-4에 보면,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이마에는 예수님의 이름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취한 모든 것이 그 사람을 관통하고 그 사람을 통해서 드러난다는 말입니다. 이런 자만이 천국에 가게 된다면 목사의 입장에서 말씀의 세계만을 증거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교회 지붕을 걷어내는 식으로 말씀을 증거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교인들이 교회라는 지붕 아래 숨어들어가지 않게끔 해야합니다. 오래된 냉장고를 드러내면 바퀴벌레가 나타나듯이 교인들로 하여금 교회가 오래된 냉장고 같은 생각하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동안 예수님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빌라도와 그 군사들은 현실을 대변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일반 민중들과 그리고 종교가들과 그리고 세상 권력자로부터 배척받으므로서 세상 전부로부터 배척받으셨습니다. 이제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비난하지 않을 자가 없음이 증명된 겁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받으시고 맨 먼저 사람들을 상대하신 것이 아니라 악마를 상대해야 했습니다. 악마는 일반 민중들이나 종교가들이나 세상 권력자들이 추구하는 것을 셋으로 구분지어 보여주었습니다. 첫째는 일반 민중들이 추구하는 떡에서 과연 예수님이 자유로울 수가 있는지 시험하여 있습니다.

둘째는, 종교가들이 추구하는 것, 즉 하늘의 구원자가 민중들이 고대하는 이적과 기적을 남발하므로서 사람들로부터 인기가 호응을 얻고자 하는 그런 성격의 메시아상에서 과연 예수님이 자유로울 수가 있는가를 시험했습니다. 세 번째는, 이 세상의 정치적 권력과 부귀 영광로부터 예수님께서 자유로울 수가 있는가를 시험했습니다. 바로 이 세 가지는 이 세상의 그 어떤 인간도 극복해내지 못한 요소이기에 세상은 철저하게 예수님의 처음과 끝 전부를 싫어하고 조롱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동안 인간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악마의 지시에 따라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이제 예수님에게 오셨던 성령이 성도에게 오게 되면 성도들도 예수님의 안목으로 세상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왜 자신이 죽은 자이며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왜 죄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즉 성도는 평생 자신이 돈만 좋아하고 인기만 좋아하고 세상의 부귀영화를 좋아하는 죄인인지를 아는 것 속에서 예수님의 공로에 감사하며 살게 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이 세상의 죽음으로 덮혀 있음을 발견케 하시고, 정말로 우리는 죽은 자이며 오직 사는 것이 십자가 공로만 산다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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