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1. 10:02

부활 능력의 연속 (마가복음 16장 15-20절)

부활 능력의 연속

2009년 11월 1일                           본문 말씀: 마가복음 16:15-20

(막 16:15, 개역)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 16:16, 개역)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막 16:17, 개역)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막 16:18, 개역)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막 16:19, 개역)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막 16:20, 개역)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부활에 대해서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기 솜씨를 원없이 드러내신 것으로 보고 그 다음부터 인간들은 아무 것도 안해도 된다고 여깁니다. 그러니까 전에는 하나님에게 조금이라도 도와줄 생각을 했는데 막상 인간이 도와 줄 엄두가 안 나게 일을 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부터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힘 도움 받지 말고 알아서 홀로 잘 하세요. 우리는 박수나 쳐드리겠습니다“라는 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발상의 배후에는, 인간들이 하나님에게 다가가면서 자신의 행함을 가지고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터나갈 수 있다는 선입견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은 자신의 본심과 전부를 바치기보다는 마치 이웃 사람과 동업하듯이 하나님을 상대하려고 하는 겁니다. 마치 생활이 어려운 친척이 주변이 있어 틈틈이 푼돈으로 도와주고 있다가 그 친척이 갑자기 졸부가 되었다는 소식에 “이제 더 이상 내가 너에게 안 도와주어도 돼지 그지?”라는 태도로 하예수님의 부활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 속에 인간의 모든 것을 빼앗는 요소가 있다는 점을 짐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탈취하게 됩니다. 마치 쓴 약을 먹기 싫어하는 아이에는 종이로 깔때기를 만들어 강제로 약을 틀어넣어야 하듯이 예수님의 부활의 세력이 자기 백성에게 강제로 들어옵니다. 쓴 약을 먹은 아이가 약을 안 먹으려고 앙탈을 부리듯이 우리 성도들도 부활의 능력이 들어오면 앙탈을 부립니다.

“예수님, 예수님의 부활을 멀리서 찬미해드릴 테니 제발 그 부활의 능력 내 안에는 들어오지 마세요. 저도 저 나름대로 계획된 인생이 있습니다”고 반항을 합니다.

열왕기하 5장에 보면, 아람나라 나아만 군대장관이 나옵니다. 문둥병자입니다. 엘리사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많은 선물을 준비하고 만나려 왔습니다. 하지만 결과로 볼 때에 그는 엘리사를 만나지도 않고 그저 말씀에만 듣고 순종하니 문둥병이 나았습니다. 문제는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입니다.

이 사람은 나아만 장군의 발목을 잡습니다. “가져온 것은 두고 가셔야지요” 이것이 바로 인간들이 자기 행위와 관련된 기적을 원하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즉 기적이 일어나되 모두 내가 원하는 기적, 내가 정상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주는 기적을 원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4:32과 5장에 보면, 서로 대조적인 풍경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4:32에는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반면에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가 나옵니다. 이 사람은 땅값을 얼마를 속이고 사도들 발에 두다니 하루 만에 차례로 사망한 부부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성령을 속였다”고 말입니다. 또한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면 판 후에는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고 말합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부활의 능력이 들어오게 되면 이미 용서받았기에 ‘제 것’이라고 여기는 것에 대해서 ‘용서해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은 그 능력과 기적으로 인하여 믿지 않는 자는 반드시 정죄가 주어질 수 밖에 없음을 분명히 하는 그런 표적으로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문동병자 10명이 예수님을 만나 모두다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다시 돌아온 사람은 사마리아인 한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왜 돌아온 것입니까? 왜 다른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 겁니까? 돌아온 사람은 예수님의 안목에서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표적으로 병고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안목에서 보면, 진정한 표적은 인간들이 원하는 기적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신기한 부활의 능력을 소지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겁니다. 하지만 하지만 이 부활의 능력은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를 성취하기 위한 용도입니다. 곧 기적이란 그냥 베풀고 폼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나니아, 삽비아 부부를 통해서 알듯이 부활의 능력 속에는 자기 것을 고집하는 것을 죽여버리는 능력이 들어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로마서 4:25의 말씀처럼,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입니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점도, 그런 죄인을 부활하시는 것도 모두 예수님 소관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알지 못하고 고침 받은 9명의 문동병자처럼 자기가 원하는 바를 원하면 그것으로 충분히 부활이 혜택을 보았다고 여깁니다.

즉 부활의 혜택을 자기가 평소에 원하는 바와 일치시켜서 그것으로 만족하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부활의 능력을 발생시키는 십자가의 효력은 인간의 모든 것을 강탈하여, ‘조금도 제 것을 제 것이다’는 식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 예가 바로 아니아아, 삽비라 부부에서 드러난 것입니다.

곧 분류입니다. 갈라짐입니다. 산책을 하다가 어떤 분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내가 국산콩을 원하는데 상인이 중국콩을 내놓아서 문제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에게 국산콩만 내놓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됩니다. 과연 그럴까요? 국산콩을 원하는 우리에게 국산콩만 정직하게 파는 상인을 만나면 문제없을까요?

부활의 세계는 이런 인간 위주의 ‘문제 있음과 문제없음’의 기준을 갈아엎어버립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인간들이 자기에게 문제없으면 문제없다고 여기는 그것이 바로 문제 있는 것으로 여기시기 겁니다. 마가복음 처음으로 돌아가 보세요. 거기에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다고 나와 있을 것입니다.

즉 복음적으로 세상을 다스리겠다는 겁니다. 복음적으로 세상을 다스리겠다는 것은, 사람들이 원하는 기적을 하나님이 주셔서 사람들의 마음의 미흡함을 채워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인간들을 회개케 하시겠다는 말입니다. 회개없이 알아먹는 복음은 없습니다. 마가복음 1장부터 세례요한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있습니다. 예수님  오시기 앞에서 세례요한이 와서 활동하는 이유도 여기있습니다.

육에서 영으로 나아가면서 나오는 현상이 바로 회개입니다. “뭔가 모든 것이 다 잘못되어 있다”는 겁니다. 정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비정상이다는 것을 깨닫는 그것이 맞다는 겁니다. 어떤 식으로 모든 게 비정상입니까?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 것’을 갖고자 합니다. 곧 ‘자기 것’이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합니다.

세례가 그러하고 믿음도 그러하고, 예수 이름으로 귀신이 쫓겨가며, 새 방언을 말하는 것도 그러하고,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는 것도 그러하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낫는 것도 그러합니다. 이 모든 기적들이 왜 구원받을 자와 정죄받을 구분하는 기능으로 작용합니다. 따라서 나 존재를 위한 기적이 아니라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보이는 과정에 성도가 참여한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가 재주자랑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더 이상, 우리 자신의 것이 없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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