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0. 25. 09:52

부활과 말씀 (마가복음 16장 8-12절)


부활과 말씀

2009년 10월 25일                          본문 말씀: 마가복음 16:8-14
                                
(막 16:8, 개역) 『여자들이 심히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막 16:9, 개역)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막 16:10, 개역)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의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고하매』
(막 16:11, 개역) 『그들은 예수의 살으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막 16:12, 개역) 『그 후에 저희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저희에게 나타나시니』
(막 16:13, 개역)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고하였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막 16:14, 개역)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사람들은 신자가 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막상 예수님을 말씀을 주면 안 믿습니다. 그렇다면 그 ‘신자’라고 우기는 것은 본인이 조작해낸 신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진짜 신자라면 하나님이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믿지 못함’의 연속입니다. 왜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일어난 일을 믿지 못할까요? 그것은 기존의 세계관을 길게 늘려서 그것으로 천국에 들어가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하심은 그냥 부활이 아니라 ‘예수님의 친히 죽으심’ 이후의 부활입니다. 이는 부활 안에 인간들이 ‘떠밀어 죽게했다’라는 내용을 품게 하기 위함입니다. 즉 기존의 세계관으로 천국에 가고자 한다면 천국은커녕 오히려 천국이신 분을 떠밀어 죽게 할 뿐이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기에 성공하기에 급급합니다. 하지만 진짜 신자는 아예 천국에서 살기에 합당한 사람을 두로 말합니다. 사람들이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는 것은 천국에 합당한 인물이 되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 부합되는 사람이 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합당한 인물은 천국에 합당한 인물로 나아갈 수가 없는데 그 이유가 바로 십자가 죽음이라는 단절 지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국악 공연을 간 적이 있는데 두 시간 내내 생각했습니다. 도대체 국악과 서양음악의 차이가 뭐냐고 말입니다. 국악에 있는 대목이 나옵니다. “여보시오. 벗님네들 내 말 좀 들어보소”, 혹은 “이 세상에 사람 외에 없으니”라는 대목입니다. 회심곡에 나오는 가사입니다.

즉 서양음악은 신에 대한 찬양이 주류가 되어 음악이 성립되었지만 국악은 같은 인간들을 상대로 하소연과 자신의 한을 퍼부어대고서는 그냥 소리없이 소멸해버립니다. 이처럼 인간이란 자기 한에 받혀 살아갑니다. 어떤 학자는 말하기를, 한국 사람은 전부 무속신앙인들이라고 했습니다.

원없이 자기 속에 한을 내뱉으며 살다가 자기 안으로 소멸해버리고 자연 안으로 쓸쓸히 잠겨버리면서 사라지는 인생입니다. 이것이 이 바닥에서 통하는 믿음이라는 겁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대해서 애통해하고 절통해하고 분통해하고 원통해하지만 그런 원한들이 하나님의 일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도리어 그러한 인간들의 사적 원한 관계로 인하여 인간들은 ‘믿지 아니함이러라’라는 경우만 되풀이 될 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는 기존의 세계관이 도리어 메시아를 죽이게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을 수 있게 하는 세계관임을 밝혀주는 것입니다. 기존의 세계관이 어떻게 천국에 합당한 세계관으로 바뀌는지는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만남에서 잘 나와있습니다.

어떤 여인이 물 길러왔을 때, 예수님은 물 얻어먹는 주제이면서도 약을 올리는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영원히 물이 나오는 샘물을 알고 있다”는 겁니다. 여인은 그 우물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그 다음에 준비된 말을 듣고자 합니다. “어디가야 그 우물을 만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곧 그 우물이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우물이 되기 위한 그 절차를 알아야 합니다. 이 여인은 반복적으로 물길으려 옵니다. 하지만 그녀의 인생이나 우리네 인생 자체가 반복적으로 행복과 만족에 목말라서 늘 일시적으로 물을 길러야 할 처지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갈증나는 반복에 대해서 언급하십니다. 예수님은 여인이 지난 날 5명의 남자를 지냈고 이제는 여섯 번째 남자와 만나고 있다고 언급해주었습니다. 자신의 과거가 들켜버린 여인은 예수님이 하늘에서 온 선지자로 간주해서 평소에 자신이 하나님을 모셔오는 종교 기법을 공개합니다. “우리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 산에서 예배하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하는데 어느 쪽이 더 효험이 있습니까?”라는 식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여기 왔다”는 겁니다. 즉 인간들이 예물을 신의 마음을 돌려놓고 유인하는 식으로 접근이 성사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찾아오게 되면 그것이 바로 사마리아 여인을 영원히 생수가 나오는 우물로 만들어내시는 겁니다. 영생이란 무엇일까? 영생이란 길게 오래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셔서 우리 인생이 아니라 예수님의 운명으로 사는 그 하나됨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메시아가 왔음을 증거하게 됩니다. 이게 바로 놀라움입니다. 즉 기존의 인생관으로 인간이 신쪽으로 다가가는 방식에 관한 것입니다. 진정한 천국이란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주시는 겁니다.

사도행전 13장에 보면, 사도 바울은 긴긴 이스라엘 역사 전체를 설명하면서, 율법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에 의해서 ‘죄사함’을 받는 시대가 하나님에 의해서 마련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아주 냉철합니다. 즉 인간들이 신의 영을 받기 위해 체험적으로 그 어떤 조작을 하여도 하나님께서 그 인간들의 행동에 놀아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전해준 바에 의하면, 천국이란 오직 ‘믿음’입니다. 믿음이란 인간의 삶의 토대 자체를 전부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삼겹살 집에 가서 고기 많이 굽게 되면, “아줌마, 여기 구이판 갈아주세요”라고 소리치게 됩니다. 그동안 우리는 무슨 구이판 위에서 살아왔습니까? 죽었다가 다시 사는 인생으로 살아왔습니까 아니면 죽음이라는 단절을 넘지 못하고 기존에 살아온 그것이 생명인양 여기고 살아왔습니까? 우리 자신이 우리를 지옥으로 몰아넣는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모든 성경 말씀이 예수님의 행함을 겨냥해서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든 성경 말씀을 내 힘으로 내가 나를 지킨다는 옛 구이판 원리에 집중에서 투자했습니다. 그런 열심히 도리어 우리의 천국행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로마서 10:2-4에 보면,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놀라움을 받습니다. ‘놀라움’이란 충격이며 지금까지 자신이 알아왔던 모든 것이 거짓이며 엉터리이며 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로 인하여 놀라는 겁니다. 즉 뭔가 잘못 살아온 것이 감잡혀 올 때 놀라게 됩니다. 이렇게 살면 안된다는 것이 감전 당하듯이 느껴질 때, 바로 ‘놀라움’이 듭니다. 이 놀라움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평생 계속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의 세계는 애초에 우리 인간들이 감히 알 수도 없고 접할 수도 없었던 그런 내용들이기 때문입니다.

남이 버린 쓰레기를 본격적으로 줏는 자를 보게 되면 우리는 부끄러움이 앞서 그 분 앞에서 아뭇 소리도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경이로움이고 숭고입니다. 우리의 과거가 지금까지 어떻게 해석해왔던지 상관없이, 예수님의 부활이 들이닥치면 나의 과거는 바로 우리의 천국행을 위하여 필히 거쳐야 될 과거가 됩니다. 즉 합력하여 모든 것이 선이 되는 겁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을 늘 십자가 앞에 세워서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경이로움 속에서 공손히 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마가복음-2008/85강-막16장8-12(부활과말씀)-mar091025.mp3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마가복음-2008/85강-막16장8-12(부활과말씀)-mar091025.wmv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마가복음-2008/85강-막16장8-12(부활과말씀)-mar091025.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