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4. 26. 19:36

무모한 짓 (사무엘하 14:28-33)

무모한 짓

2010년 4월 25일                         본문 말씀: 사무엘하 14:28-33

(삼하 14:28, 개정) 『압살롬이 이태 동안 예루살렘에 있으되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삼하 14:29, 개정) 『압살롬이 요압을 왕께 보내려 하여 압살롬이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 부르되 그에게 오지 아니하고 또 다시 그에게 보내되 오지 아니하는지라』
(삼하 14:30, 개정) 『압살롬이 자기의 종들에게 이르되 보라 요압의 밭이 내 밭 근처에 있고 거기 보리가 있으니 가서 불을 지르라 하니라 압살롬의 종들이 그 밭에 불을 질렀더니』
(삼하 14:31, 개정) 『요압이 일어나 압살롬의 집으로 가서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 종들이 내 밭에 불을 질렀느냐 하니』
(삼하 14:32, 개정) 『압살롬이 요압에게 대답하되 내가 일찍이 사람을 네게 보내 너를 이리로 오라고 청한 것은 내가 너를 왕께 보내 아뢰게 하기를 어찌하여 내가 그술에서 돌아오게 되었나이까 이 때까지 거기에 있는 것이 내게 나았으리이다 하려 함이로라 이제는 네가 나로 하여금 왕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하라 내가 만일 죄가 있으면 왕이 나를 죽이시는 것이 옳으니라 하는지라』
(삼하 14:33, 개정) 『요압이 왕께 나아가서 그에게 아뢰매 왕이 압살롬을 부르니 그가 왕께 나아가 그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어 그에게 절하매 왕이 압살롬과 입을 맞추니라』


용서를 제대로 받은 사람은 자신의 죄인됨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용서를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여전히 자신의 가치됨을 유지하게 됩니다. 누가복음 7장에 보면, 동네에서 행실이 나쁘다고 소문한 한 여인이 울면서 예수님의 발을 씻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 당시 여자에게 있어 향수란 곧 ‘힘’을 의미입니다.

자신의 지탱할 수 있는 힘 말입니다. 하지만 그 여인은 용서의 의미를 알고부터는 자신이 이 힘을 소비할 자격이 없음을 알고 아낌없이 예수님의 발에 붓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바리새인들의 눈에는 힘의 낭비처럼 보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용서의 중심 인물로 놓고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많이 용서받은 자가 많이 사랑한다”고 말입니다. 이로서 용서를 받은 자에게는 용서가 나오고 용서받지 못한 자에게는 힘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요압 장군이나 압살롬에게 있어 다윗의 존재란 단순히 ‘나 보다 더 많은 힘 가진 자’라는 의미 뿐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힘 자랑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왜 이 성경에 나와야 할까요?

그것은 장차 오실 예수님께서 ‘다윗의 혈통’으로 오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3-4에 보면,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다윗의 혈통이란 ‘죄인의 덩어리’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의 덩어리에 들어오셔서 그 죄의 능력에서 빠져나가시므로서 영생임을 드러내셨습니다. 따라서 죄인 속에서 영생이 들어있는 형식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의 형식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이란, 그리고 다윗의 언약이란 죄인 속에 생명이 들어있는 식으로 이 땅에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이라는 분은 왕입니다. 왕이란 사람들 속에서 뽑히는 겁니다. 모두가 죄인이라는 말은 곧 거기서 뽑힌 왕도 죄인이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용서는 필히 ‘죄로 인한 죽음’을 유일한 근거로 해서 성립됩니다. 우리가 죄인이 아니라면 구태어 예수님께서 죽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용서를 거부하는 것은 자신이 그토록 죄인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저 예수님의, 산상설교나 물위를 걸으시는 그런 기적으로도 구원이 되리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베드로 같은 경우에 그는 직접 물 위를 걸어본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기적이 결코 베드로에게 구원을 주지를 못합니다.

왜냐하면 물 위를 걸었다는 사실 자체가 자신이 전적으로 죄인됨을 말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저주했습니다. 그는 자력으로 죄의 힘으로 빠져나올 수 없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저주받아 죽어 마땅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죄에서 빠져나오신 분이 계십니다.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로부터 부활되심으로서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로 드러났습니다. 이렇게 볼 때, 고린도전서 15:17의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다시 사는 것이 없었으면 우리의 믿음도 헛짓에 해당됩니다. 바로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다윗 언약’을 통해 넣어주셨습니다.

따라서 힘을 원하는 자들에게는 다윗은 힘을 제공하는 자로 오인하게 되고, 용서를 원하는 자에게는 다윗을 용서의 바탕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솔로몬 같은 경우에는 하나님께 사랑을 받은 자입니다. 그것은 그의 어머니가 밧세바요 그의 아버지는 우리아입니다. 이 구조는 죄인과 그 죄로 인한 피해자 구조로 짜여져 있습니다.  

그래야지만 용서라는 것이 발생되기 때문입니다. 철저하게 죄가 뭔지도 드러나는 겁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압살롬은 용서보다는 힘으로 버틸려는 사람입니다. 즉 힘을 얻기 위해 죄인인 척 해보는 겁니다. 그러면 자기에게 오는 정죄가 사라지고 자신이 내심 노리고 있던 힘을 여전히 얻을 수 있는 자격자로서의 복귀된 신분을 얻고자 합니다.

이점은 오늘날 교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작용합니다. 사람들이 ‘죄 지었다’의 의미는 자신이 갖고 있는 힘이 빠지는 경우를 통해서 파악하려고 합니다. 이러다보니 힘이 빠지지 아니하면 자신은 결코 저주받을 자가 아니요 축복받아 누리고 있는 그런 신분자라고 여기게 됩니다. 즉 제대로 ‘죄인’의 자리에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가진 힘이 다 날아가버리게 되면 그제사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굴어야지만 신으로부터 용서를 받고 재앙이 자기에게서 아무 탈없이 어물쩍 넘어가리라고 여깁니다.

압살롬은 세상의 권력의 구조를 자기 위주로 배치하려고 합니다. 최고의 힘을 마저 갖지 못해서 안달났습니다. 자신이 왜 죄인 중에 괴수인가를 아는데 안달이 난 것이 아닙니다. “나는 남들에게 밑지고는 못 살겠다”는 열의뿐입니다. 용서받을 죄라는 것은 자신에게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있어 용서받을 일이란 잠시 더 힘 앞에서 굴복하는 굴욕감을 견뎌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겁니다.

이것은 다윗이라는 구원자, 용서하는 자를 자신이 파악할 수 있는 관림자의 위치에 있다고 여기는 겁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누구도 하나님의 일을 관찰할 수 있는 제 3의 자리에 있지 못합니다. 마태복음 25:31-33에 보면,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오른편의 자리란, 왼편, 오른편을 바라볼 수 있는 제 3의 자리를 허용하지 않고 그 모든 피조물을 왼편 아니면 오른편, 오른편 아니면 왼편으로 분류될 대상이다는 사실을 알리는 위치입니다. 즉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는 인간이 스스로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재판정에는 방청객들이 있지만  하늘나라 재판정에는 일체 방청객들이 없이 모두가 피고석에 있을 뿐입니다. 압살롬은 그가 생각하는 ‘힘으로 통치하는 차기왕’의 입장을 요압 장군을 통해서 시험해봅니다. 실제적인 힘 발휘에서도 요압 장군을 능가하는지 건드려보고 싶은 것입니다. 이러한 힘과 용서의 갈등이 여전히 우리 성도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관심두게 하시고, 지금 나를 위한 힘이 얼마나 되는지 관심두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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