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8. 23. 16:11

베드로의 배신 (울고 있는 성경)


《 설교 요약 》                                                                                                      2009년 8월 30일

〈 지난 주 설교 요약 〉

사람들이 예수님을 심문한 것은 예수님과 자기와의 혹시 생각이 같은가 찾아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없었습니다. 그래서 죽였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하나님 심판주 앞에서 자기 가치를 포기 못합니다. 자신을 죄인으로 알기 위해서, 교회를 나오지를 않고 말씀에서 얼굴을 돌립니다. 이 세상에서는 그런식으로 피할 수 있으나 결국 지옥이 그들의 최종 도착점이 됩니다. 어떤 경우를 당해도 마지막이 지옥이면 모든 게 저주스러운 인생입니다.
 

〈이번 주 설교 요약 〉

마가복음 14:66-72                                                                                                      베드로의 배신

닭이 베드로 앞에 배치되는 있는 것은 베드로의 변심을 헤아리는 계기판으로서 베드로 스스로 전에 말씀하시던 예수님의 발언을 기억나기 위한 조치입니다. “한 번, 두 번, 드디어 세 번”라는 식으로 베드로 스스로가 그 계기판을 들여다보면 예수님을 배신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이런 배신은 베드로가 자진해서 동네방네 떠벌리는 식이 아니라 누가 물으니까 답변하는 형식으로 발설됩니다. 그렇다면 베드로의 배신에는 베드로 곁에서 예수님에 대한 평소의 심정을 물어보는 자가 있어야 하고 또한 닭이 있어야 하고 또한 베드로의 속심정이 형성되어야 하는 겁니다. 이렇게 요소가 마련되어야 “예수님께서 일찍이 베드로를 겨냥해서 하신 말씀이 성취가 되어지는 겁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결국 통곡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압니다. 그것은 닭 울음이라는 계기판이 자기 앞에서 세 번씩이나 소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닭이 곧 잡혀가는 예수님을 대신해주고 있는 짐승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예수님을 대신해서 우리 자신들의 잘못을 알아들어라 고 울어주는 짐승이 무엇입니까? 닭이 울어대는 기능을 무엇이 하게 되는 겁니까? 그것은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은 우리 전부를 베드로 한 사람에다 집어넣고 스스로 닭이 되고 우리 앞에서 울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우는 기준은 오직 하나 ”너는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가 우리 자신의 잘남과 대단함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 예수님과 관련된 책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보고서는 자신의 잘못이 나오지 않는 자는 성경 속에서 자신의 실력을 찾는 중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는 곧 세상 속을 살면서 자신의 실력이나 자신이 받은 행운을 찾지 말라는 말과 같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고 성경을 보면서 발견한 것은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