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9. 29. 17:55

목자와 양무리 (예레미야 23장 1-4절)

본문 : 예레미야 23장1-4절
제목 : 목자와 양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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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9강-렘23장1-4목자와양무리-jer100929

목자와 양무리

2010년 9월 29일                            

본문 말씀: 예레미야 23:1-4

(렘 23:1, 개역)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목장의 양무리를 멸하며 흩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
(렘 23:2, 개역) 『그러므로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내 백성을 기르는 목자에게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내 양무리를 흩으며 그것을 몰아내고 돌아보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인하여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23:3, 개역) 『내가 내 양무리의 남은 자를 그 몰려갔던 모든 지방에서 모아 내어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의 생육이 번성할 것이며』
(렘 23:4, 개역) 『내가 그들을 기르는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축이 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접촉하는 기능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제사장 기능이요 다른 하나는 목자 기능입니다. 이 두 기능은 요한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에게서 만납니다. 목자와 양이 만나는 유일한 접촉점은 바로 ‘목자의 죽음’입니다. 즉 목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희를 위해 죽어야 한다”고 멘트를 날리면, 참된 양들은 “우리는 바로 그런 목자만을 고대했습니다”고 화답하는 겁니다.

이 노선 외에 달리 참된 목자와 접선되는 길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칭 양이라고 우기는 자들은 이런 참된 목자에 대해서 고개를 절레절레 하면서 다른 거짓 목자를 양산하고 찾습니다. 자신들이 기대하는 세상 것을 가져다 주는 목자를 찾게 됩니다. 바로 이런 가짜 목자은 구약 때부터 나옵니다.

오늘 여기에 나오는 목자들의 특징은 본인들이 목자 하겠다고 해서 나선 자들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하나님께서 목자하라고 맡겨 준 자들이라는 점입니다. 목자 노릇할 자격이나 능력이 있는 자가 아니라 그냥 목자 해보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역할을 맡긴 것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날 때, 어떤 사람은 부잣집 아들로, 어떤 이는 극히 가난한 자식으로 태어나는 것도 다 하나님께서 역할을 맡긴 것입니다. 즉 가난한 인간이 부잣집 아들보다 질이 떨어져서 가난한 자식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냥 그 역할을 맡기신 것입니다.

1971년, 미국 스텐포드 대학에서 이런 실험을 했습니다. 감옥이라는 억압된 환경 속에서  평범한 자라 할지라도 자신이 일방적으로 맡은 역할에 어떤 식으로 적응해 나가느냐를 알아보는 실험입니다. 그런데 2주 동안 할 실험이 5일만에 강제로 중지되었습니다. 예상 밖의 심각한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실험에 참가하게 된 자들은 다들 대학 졸업 이상의 자기 성찰이 가능한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실험이 시작되지 '간수'들은 모욕적인 기합과 폭행을 일삼았으며, '죄수' 들은 처음에는 조직적인 저항으로 맞섰지만 나중에는 우울증과 자기비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교수는 간수될 자에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주지시켰습니다. 첫째, '이것은 나의 임무이다' 라고 생각하는 소명의식, 둘째, 제복과 선글라스가 주는 권위, 셋째, 죄수를 나와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고 한갓 대상물로 격하시키는 비인간적 대우.

오늘날 소위 하나님의 목자라고 자처하는 그 목사 세계에서 자기 최면 걸 듯이 되풀이해서 숙지하는 내용들입니다. 아무리 선량한 자라도 주어진 역할로서 상황에 처하면 자기 분수를 잊게 됩니다. 참된 선지자들에게 안에 예수님의 영이 계시기에 장차 오실 메시아의 희생을 발산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가짜 목자들은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하는 숨겨진 악마성을 목자 역할극을 통해서 유감없이 발산하게 됩니다. 이처럼 가짜 목자가 먼저 등장해야 비로소, 사람들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일, 즉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에게 얻어 맞아 죽는 식으로 새로운 피조물을 만들어내는 전략이 성사됩니다.

히브리서 7장에 보면, 제사직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먼저 철석까지 레위지파에서만 나온다고 하셨다가 결국에는 유다 지파에서 영원한 제사장이 나온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레위지파에서만 제사장이 나오는 취지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참된 제사장을 말하기 위해서 죄악된 제사장들을 앞서 배열하는 겁니다.

이런 경우는 목자 기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세기 49:24을 보면,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요셉 지파에서 목자 기능을 한다는 겁니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시편 80:1에 등장하는 일을 하십니다.

즉 “요셉을 양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자여 빛을 비취소서”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목자 역할을 해야 하는 그 요셉 지파가 이스라엘 전체를 대변해서 참된 목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진정 무엇이 이 지상에서의 참된 목자상인 것을 친히 배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시편 78:67-71에 보면, “또 요셉의 장막을 싫어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유다 지파와 그 사랑하시는 시온 산을 택하시고 그 성소를 산의 높음 같이, 영원히 두신 땅 같이 지으셨으며 또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저희를 이끄사 그 백성인 야곱, 그 기업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고 되어 있습니다.

즉 레위지파에서 도출된 제사장직이나 요셉 지파에서 도출된 목자직이나 모두 유다지파에 속해 있는 다윗의 자리가 최종적으로 완성될 기능입니다. 이는 히브리서 7장에 보면,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는 하늘에 속한 족보, 멜기세덱 족보가 지상에서 오직 유다지파를 통해서만 접촉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남은 양들만 따로 포로잡혀 가고 그들에게는 기존의 목자상과는 전혀 다른 목자들을 보내어 하나님이 계시는 이 땅으로 되돌아오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이 여호와께서 예수님이라면 그 예수님은 바로 그 거처를 십자가를 통해서 이 지상에서 하늘로 변경시켰습니다.

따라서 레위지파에서 제사장이 나온다는 율법이나 요셉 지파에서 목자가 나온다는 그 율법이나 모두 옛 지파에 속하는 겁니다. 이 모세 율법의 취지는 그 역할을 맡은 인간들로부터 죄를 끄집어내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해서 인간에 의해 죽어버린 그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한 메시아가 되셔서 그 ‘대신 죽으심’만을 근거로 새로운 자기 백성을 삼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성령이 임한 사도들은 자신들을 만물의 쓰레기로 보았습니다. 고린도후서 4;12에 보면,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3에는,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즉 어떤 이도 유일하게 구원의 능력으로 작렬하는 그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가릴 수 없다는 겁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죄인인 줄로 알아 양이 양답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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