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8. 15. 21:15

많은 사랑

◆ 설교 요약 ◆ 2010년 8월 22일   이근호목사

〈 지난 주 설교 요약 〉

사람들은 자기가 주최하는 일이 아니면 무조건 반대하게 마련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에 대해서도 무조건 자기 편이 되어야 한다고 우깁니다. 하지만 이런 인간의 마음 속에는 신에 대한 복수심이 가득 담겨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이란 우리의 지혜로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일방적인 용서로서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삶의 바깥 풍경은 달라집니다. 십자가가 자주 보입니다.


〈 이번 주 설교 요약 〉

본문 : 누가복음 7:36-39            제목 : 많은 사랑

흔히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들 합니다. 과연 무엇을 가지고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갈라디아서 5:6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내가 율법을 지켰노라”는 주장은 하나님 앞에서 통하지 않는 ‘효력 없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입니다”라고 하면서 내놓는 믿음은 ‘효력 있는 믿음’입니다. 성도의 믿음이란 자신의 행함을 믿는 행함이 아니라 예수님의 행하심을 믿는 사랑입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의 행하심을 믿는 자라면 사랑이 나오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 이유는, 그 예수님의 사랑이 죄인에게 퍼부어주시고 씻어주신 용서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결코 미리 속에서만 맴도는 관념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어떤 행실이 좋지 못하다고 소문 난 여인이 행한 행함으로 그 실제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자신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그 어떤 용서받음도 필요치 않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왜 이들이 예수님에게 이런 태도로 나왔을까요? 그들은 ‘사랑 배품’에 대해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용서 받음이 없이도 얼마든지 사랑 배품이 가능하다고 보는 겁니다. 그들은 자신은 용서받지 않은 채 남들을 용서하겠노라고 덤벼듭니다. 이렇게 되면 자신들이 벌리는 용서와 화해의 행위들은 몽땅 자신의 의로움이 담는 저금통 안으로 쓸어 담기게 됩니다. 이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왜 자신들이 용서받아야 할 존재인지를 도무지 알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저 행실 나쁜 여인의 생활보다 자신의 생활이 월등하게 정리되어 있고 성결 되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감히 하나님 앞에서도 ‘한 점 부끄러울 것이 없다’고 우기는 겁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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