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8. 15. 21:08

죄인의 친구 (누가복음 7장 29-35절)

본문 : 누가복음 7장29-35절
제목 : 죄인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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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의 친구

2010년 8월 15일                           

본문 말씀: 누가복음 7;29-35

(눅 7:29, 개역)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눅 7:30, 개역) 『오직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그 세례를 받지 아니한지라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
(눅 7:31, 개역) 『또 가라사대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꼬 무엇과 같은고』
(눅 7:32, 개역)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을 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눅 7:33, 개역) 『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눅 7:34, 개역)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눅 7:35, 개역)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낯선 인물의 등장은 반드시, “저 사람이 옳은 사람일까 아니면 그른 사람일까요?” 따지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따지는 기준은 필히 자기 자신에게서 나온다는 점입니다.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풀 때,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은 그 세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볼 때에 세례 요한은 너무나도 낯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해서 옳은 존재가 아니라 그른 존재인 것입니다. 그것은 율법사들의 허가를 받지 않고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지혜란 필히 그것을 주장하는 본인들은 무조건 옳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주장하게 마련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천국에로의 구원문제까지 확장시키게 됩니다.

즉 자기가 보기에 자기가 옳기 때문에 자신이 구원되어야 마땅하고, 자기 보기에 저 사람은 나쁘기 때문에 지옥가도 마땅하다고 보는 겁니다. 그런데 만약에 진짜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이 이런 사고방식을 악하고 지적하면 그 때는 어쩌려고 하실 겁니까? 성경에 나와 있는 이야기와 내용들은 자신들이 옳다는 생각을 견지하면서 풀어내면 안됩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어떻게 풀리는 겁니까?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은, 숨겨져 있는 신의 뜻이 지상에 나타날 때는 법으로 나타난다는 겁니다. 이 점에 대해서 일반인들도 매우 반기는 눈치입니다. 왜냐하면 지키면 선하게 된다는 것의 법적 형식이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법이 마련되지 않는 채 의롭게 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문제로 여기질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천국과 지옥을 가름하면서도 한데 결합해서 등장한 예가 창세기 25장에 나옵니다. 야곱과 에서가 쌍둥이로 세상에 출몰하게 됩니다. 이들이 그야말로 인간 본색을 그대로 갖고 태어납니다. 이들이 서로 상대하면서 보여주는 것은 자기 위주의 복수심입니다.

즉 인간이란 육적 세계에서 영적 세계로 이어지는 그 중간매개물 위치에 놓여 있는데 인간이 갖고 있는 속성이 영적인 세계가 접촉되는 지점에 복수심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창세기 4장에서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장면을 말합니다. 인간이 영적 세계에 속한 악한 악마와의 결탁이 인간 심성적인 차원에서 드러나는 것은 신과 인간에 대한 보복심리요 복수심입니다.

즉 “누구든지 나를 그르다고 하는 존재는 내가 가만두지 않겠다” 정신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타고난 심성을 밑에서 깔고서 세상을 살게되면 소위 옳고 그르다는 자기 위주로, 자기 중심으로 파악하게 마련입니다. 예수님은 이 악한 세상과 저 선한 천국과의 매개체로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내세운 바는 이것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다. 따라서 신에 대한 복수심을 원없이 나에게 퍼부어라. 내가 너희들 속에 맞아 죽을테니”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십자가 사건은 인간에게 숨겨져 있는 신에 대한 복수심을 바깥으로 드러나게 하므로서 더 이상 인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지혜가 천국에는 무용지물인 것을 말해주게 됩니다.  

오늘 비유도 역시 이 십자가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에서 하나님의 지혜는 항상 인간에게 있어 너무나 어리석어서 논의할 대상으로 취급조차 하고 싶지를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이처럼 인간들로부터 천대받는다는 것은 벌써 인간들이 다른 것을 가지고 지혜라고 꼭 쥐고 있다는 점을 말해줍니다.

인간들의 지혜란 자신이 주최하는 일이 무조건 옳다는 것에서부터 나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일에 동조하지 아니하면 무조건 나쁘다고 정죄하는 속성을 보여줍니다. 장터에서 애들이 장례식과 결혼식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 패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한쪽이 즐거운 피리를 불면 다른 한쪽에서 춤춰주는 조건으로 다른 한쪽은 애곡할 때 같이 합세해서 울어주는 것으로 서로가 즐거운 놀이를 진행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를 하면서 같이 놀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서로가 사전의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놀이가 엉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혼식 놀이도 아니되고 장례식 놀이도 시원찮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왜 일이 꼬이게 되었느냐는 겁니다. 그것은 각자 자신이 주최하는 놀이 이상의 시선과 안목을 인간들이 갖고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 높은 차원에서 인간의 실성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없고 지혜가 없는 겁니다. 세례 요한의 등장과 예수님의 등장은 인간들의 기존의 지혜나 안목의 차원에서는 그 의미가 포착될 수 없는 지혜로서 작용하는 겁니다. 즉 하나님의 나타내시는 지혜는 인간으로서 자신의 주체할 놀이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지금 유대인들은 예수님과 세례 요한을 각각 이 땅에서 와서 자기 패거리 만들어서 이벤트 벌이는 잡류라고 단정 짓고 싶은 겁니다. 즉 예수님과 세례 요한의 주장을 얕잡아 보고 싶은 겁니다. 자기 빼놓고 다들 그르고 틀리다고 말하고 싶은 겁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일과 세례 요한이 한 일이 하나의 지점에서 통합되려면 그것은 이 세대의 지혜로서는 도저히 밝혀낼 수 없는 숨어있는 차원에만 발생될 일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죄인의 친구’라는 자리입니다.

그 이야기를 예수님의 적들이 이야기합니다. 즉 적들의 입을 통해서 숨어있는 지혜가 이 세상에 나타날 때의 자태를 폭로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으로부터 욕얻어 먹는 그 자리에서 ‘지혜의 자녀’라는 생산물이 새롭게 태어나게 되는 자리가 됩니다. 야곱과 에서 형제 중에서 하나는 구원되고 다른 하나는 버림받게 되는데 이러한 분리됨은 서로의 구원 열성의 보상으로 주어진 결과가 아니라 일방적인 하나님의 지혜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러니까 지혜란 다름 아닌 ‘분리시킴’입니다. 이 지혜가 옳다고 믿는 자는 참으로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음’을 고백하는 자입니다. 일방적인 선택과 일방적인 사랑의 결과로서만 구원될 뿐임을 고백하는 자는, 비로소 자신의 죄를 압니다. 즉 인간이란 자신이 하는 일에 하나님이 같이 편들어주지 아니하면 하나님에 대한 복수심을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두게 된다는 속성을 말입니다.

따라서 이점을 아는 지혜의 자녀들은 자기에게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해서 무조건 감사하고 고마워합니다. 자기로서 내세운 업적와 공로가 아무 것도 없기에 모든 일을 하나님의 지혜를 드러내는 기계가 된 것을 감사하게 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우리 자신을 쪼개어서 예수님의 것으로 넘기시는 그 작업에 감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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