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7. 25. 10:24

왕 보호 (사무엘하 18장 1- 4절)

본문 : 사무엘하 18장 1- 4절
제목 : 왕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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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강-삼하18장1-4(왕보호)-2sa100725

왕 보호

2010년 7월 25일                            

본문 말씀: 사무엘하 18:1-4
      
(삼하 18:1, 개역) 『이에 다윗이 그 함께한 백성을 계수하고 천부장과 백부장을 그 위에 세우고』
(삼하 18:2, 개역) 『그 백성을 내어 보낼새 삼분지 일은 요압의 수하에 삼분지 일은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동생 아비새의 수하에 붙이고 삼분지 일은 가드 사람 잇대의 수하에 붙이고 백성에게 이르되 나도 반드시 너희와 함께 나가리라』
(삼하 18:3, 개역) 『백성들이 가로되 왕은 나가지 마소서 우리가 도망할지라도 저희는 우리에게 주의하지 아니할 터이요 우리가 절반이나 죽을지라도 우리에게 주의하지 아니할 터이라 왕은 우리 만 명보다 중하시오니 왕은 성에 계시다가 우리를 도우심이 좋으니이다』
(삼하 18:4, 개역) 『왕이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가 선히 여기는 대로 내가 행하리라 하고 문 곁에 서매 모든 백성이 백 명씩 천 명씩 대를 지어 나가는지라』


다윗 왕 중심으로 전열이 정비됩니다. 두겹 세겹으로 군사들이 배치가 되었습니다. 물론 그 중앙에서 다윗만 있습니다. 왜 다윗만 중앙에 위치해야 합니까? 다른 사람은 사람도 아닙니까? 오늘날 현대인들의 의식으로서 이러한 위치 배정은 충분히 불만의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옛날의 국가 형태에 야유를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일개 부속품으로 부리고 왕만 사람 대우받았다는 겁니다. 혹은 일반인들은 사람대우 받았다면 왕만 홀로 신 대우받았기에 이는 전적으로 비인격적이고 불평등한 사회 구조라는 겁니다. 영 현대인들의 취향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이 모르는게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언약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자신의 뜻을 드러내는데 있어 기존의 인간들의 본성에 부합하도록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들이 쉽게나 어렵게도 어쨌든 믿을 수 있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언약으로만 드러내시고 그 언약을 믿을 수 있는 힘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가능토록 했습니다.

따라서 은혜를 철수하면 하나님이 언약을 도저히 믿기지 않도록 조치해놓은 것입니다. 곧 다윗 시대의 사람들은 다윗을 그들 가운데 박아놓은 것이 하나님 방식의 언약전달 방식입니다. 문제는 과연 그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 정신을 알았느냐 하는 점입니다. 일단 겉으로 보면 백성들은 다윗을 아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3절에 보면, “왕은 우리 만 명보다 중하시오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윗왕을 소중히 여김이 과연 다윗을 심어놓으신 하나님의 진정한 언약적 취지에 부합되는 인식일까요? 아니면 단지 눈에 보이는 왕이 있어서 단체가 구심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질서 차원의 배려 때문일까요?

실제로 다윗은 일반인들보다 특출난 면을 없습니다. 다같이 아담의 후손들이라서 아담의 죄악된 속성을 품고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그런 다윗을 선택해서 왕으로 삼으셨다는 그 하나님의 의지가 중요합니다. 이로서 다윗 시대에는 그 어느 누구도 다윗의 존재를 대신해서 자신을 중앙에 둘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백성들은 그저 자신들이 자신들도 동일한 인물인 다윗의 주변 인물로 배치되어 있는 그것으로 대만족을 하고 있습니다. 형식적으로는 하나님의 다윗 선택의 취지를 용납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결국 눈에 보이는 다윗 존재의 쓸모짝 때문에 잠시 다윗을 아꼈을 뿐임이 중요합니다.

즉 그들의 신체를 공격하는 적들이 눈에 보일 때는 다윗을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다윗 언약을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증거로 바로 솔로몬과 그 이후 르호보암 시대가 되면 이스라엘 사람들의 태반은 다윗언약을 버리고 눈에 보리는 권력자를 새로운 중심 인물로 삼았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진정으로 다윗 언약을 이해못하고 있는 겁니다. 즉 다윗 언약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 소용돌이에서 자신이 다윗 언약의 부속품이요 소모품으로 존재함을 감사히 여기면 될터인데 그것이 아니라 항상 자신을 중심에 놓고서 세상 전체를 자기 주변을 돌고도는 것으로 이해하는 겁니다.

구약을 보면서 해석에 난감한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그 중의 일부는 바로 이스라엘의 왕들이 ‘하나님께 돌아왔다’는 상황이 어떤 상황을 말하는지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대목들입니다. 역대하 15:2을 보게 되면, “저가 나가서 아사를 맞아 이르되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저를 찾으면 저가 너희의 만난바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저를 버리면 저도 너희를 버리시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난 뒤 12-15에 보면, “또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기로 언약하고 무릇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는 자는 대소 남녀를 무론하고 죽이는 것이 마땅하다 하고 무리가 큰 소리로 부르며 피리와 나팔을 불어 여호와께 맹세하매 온 유다가 이 맹세를 기뻐한지라 무리가 마음을 다하여 맹세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저희의 만난바가 되시고 그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이러한 상태로 인정받은 아사 왕의 마음가짐이 도대체 어떤 상태냐 하는 겁니다. 바로 왕 자신이 자신을 눈에 보이지 않는 다윗언약 작용의 소용돌이 중 한 지점에 배치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할 경우입니다. 즉 자신을 자기 운명의 중심 자리에 놓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동일 인물인 아사왕이 과연 후대에는 어떻게 처신했습니까? 역대하 16:7-10에 보면, “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한고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구스 사람과 룹 사람의 군대가 크지 아니하며 말과 병거가 심히 많지 아니하더이까 그러나 왕이 여호와를 의지한고로 여호와께서 왕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아사가 노하여 선견자를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 말에 크게 노하였음이며 그 때에 아사가 또 몇 백성을 학대하였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12절에 보면, “아사가 왕이 된지 삼십구년에 그 발이 병들어 심히 중하나 병이 있을 때에 저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난처한 문제, 즉 어떻게 믿음이라는 것이 이랬다저랬다 할 수 있는 문제인가를 풀기 위해서 언약에 붙었다가 언약에서 떨어지는 그 핵심 요인이 결코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체에서 유발된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언약으로 인하여 우리가 여기 존재하고 구원되고 살아가고 있는 상태가 곧 하나님께 돌아온 상태요, 그렇지 않고 자립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그 힘으로 산다고 여기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을 가려버리는 악마짓을 하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늘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의 일생이 따로 없음을 일깨워줍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왕이 계심을 보여주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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