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7. 11. 10:28

도와주는 사람 (사무엘하 17장 15-20절)

본문 : 사무엘하 17장15-20절
제목 : 도와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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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강-삼하17장15-20(도와주는사람)-2sa100711

도와주는 사람

2010년 7월 11일                               

본문 말씀: 사무엘하 17:15-20

(삼하 17:15, 개역) 『이에 후새가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이르되 아히도벨이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여차여차히 모략을 베풀었고 나도 여차여차히 모략을 베풀었으니』
(삼하 17:16, 개역) 『이제 너희는 빨리 사람을 보내어 다윗에게 고하기를 오늘 밤에 광야 나룻터에서 자지 마시고 아무쪼록 건너가소서 하라 혹시 왕과 그 좇는 자들이 몰사할까 하노라 하니라』
(삼하 17:17, 개역) 『그 때에 요나단과 아히마아스가 사람이 볼까 두려워하여 감히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에느로겔 가에 머물고 어떤 계집종은 저희에게 나와서 고하고 저희는 가서 다윗에게 고하더니』
(삼하 17:18, 개역) 『한 소년이 저희를 보고 압살롬에게 고한지라 그 두 사람이 빨리 달려서 바후림 어떤 사람의 집으로 들어가서 그 뜰에 있는 우물속으로 내려가니』
(삼하 17:19, 개역) 『그 집 여인이 덮을 것을 가져다가 우물 아구를 덮고 찧은 곡식을 그 위에 널매 도무지 알지 못할러라』
(삼하 17:20, 개역) 『압살롬의 종들이 그 집에 와서 여인에게 묻되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이 어디 있느냐 여인이 가로되 그들이 시내를 건너가더라 하니 저희가 찾아도 만나지 못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니라』


성경 해석의 기본은 ‘자리 싸움’입니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자신의 자리가 깨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 길에 나서려고 하고 진리와 생명을 얻고자 시도합니다. 이것은 말도 안됩니다. 사람들이 교회 오더라도 자기 자기에 위기감이 들면 쓸쩍 자리 자기 사수에 나서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 자리란 돈과 권력만이 아닙니다. 자존심과 명예와 자신의 영광의 자리까지를 포함해서 하는 말입니다. 사람은 손해보고 살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은 위기를 자처합니다. 이것은 다윗의 자리 때문입니다. 즉 그 사람들은 하늘의 길이 다윗의 자리를 통해 나 있다는 것을 압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은 ‘길’을 보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하나님쪽으로 연결되어 있는 길을 그들은 알게 된 것입니다. 그 길이 뭉개지지 않도록 다윗을 돕는 겁니다. 그 길이 계속 살아있어야 했습니다. 이것은 위험과 위협을 초래하는 계기가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편에서 산다는 말은 하나님의 자리 앞에서 자신들의 자리는 확보될 수 없음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왕과 제사장직의 만남입니다. 제사장들은 거짓말을 해서라도 다윗의 왕 자리를 지켜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러한 사태는 오늘 본문의 시대 뿐만 아니라 모든 시대에 다 공히 적용될 사항입니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실은 부끄러운 일일 수가 있습니다. 어떤 기준에 의해서 그러합니까? 그것은 “나는 거짓말이 나쁜 짓인 것을 아는 나이다”가 확립되어 있는 자들에게는 부끄러운 짓입니다.

하지만 그 거짓말을 하는 본인의 삶이 자신의 영광과 가치를 위한 삶이나 자기 자리를 빛내기 위한 삶이 아니라 예수님의 자리를 위해 양보하고 양도해야 할 자리라면 어떠합니까? 그래서 거짓말이 부끄러운 짓이겠습니까? 아닐 것입니다. 여호수아 2장에서 기생 라합은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만약에 그녀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그것으로 인해 그녀의 가정은 ‘구원의 붉은 줄’을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붉은 줄’이 없는 여리고성 주민에게는 그 어떤 자비도 돌아가지를 못합니다. 결국 여호와 하나님에게는 자기 자리를 포기한다면 얼마든지 구원될 수 있음을 말해주는 모델로서 기생 라합의 가정을 존재해야만 했습니다.

거짓말을 할 줄 아는 인간은 그 자체로서 나쁜 것이 아니라 자기 자리 확보를 위한 거짓말이지 아니면 예수님의 자리를 보여주기 위함 거짓말인지를 구별되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31에 보면,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의 일상적인 삶 속에 그 어느 시점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침투되지 않는 일은 없다는 말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배 참석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뜻과의 접촉되는 기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평소에 쉬지 않고 터지는 거짓말해야 하는 삶의 환경 속에서 하나님은 줄기차게 ‘우리 자리’와 ‘하나님의 자리’를 비교시키십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거짓말인가 하는 겁니다. 누구를 위한 거짓말인가 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두 제사장은 다윗의 다윗됨을 보여주기 위해 거짓말을 해야 하는 그런 여인의 도움을 필요로 한 것입니다. 그녀의 거짓말이 아니었음은 이 두 제사장은 목이 달아났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다윗의 자리를 괴멸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더불어 다윗언약을 맺었는데 그 내용이 다윗 가문의 영속성입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혈통적 다윗 가문 유지가 그 목표가 아닙니다. 다윗 가문이 영속되려면 더 이상 그 다윗 가문을 인간들의 혈통에 맡길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자손의 자리를 인간에게 허락하지 않고 직접 주님께서 맡게 됩니다. 시편 110:1-4에 보면,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홀을 내어 보내시리니 주는 원수 중에서 다스리소서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진정한 제사의 완성은 끊임없이 전쟁의 위기 속에서는 약속을 위하여 자리 자리를 포기할 수 있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버티게 됩니다. 즉 성도의 혈통은 예수님의 새로운 자리를 보여주기 위해 예수님께서 활약하는 자리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자리가 우리의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완성을 포기할 만큼 귀한 자리입니까?

오늘은 장맛비가 세차게 되는 날입니다. 이런 날에 돈 주고 세차장에서 세차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세차장에서 세차하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세차되기 때문입니다. 이와마찬가지로 인간들의 모든 거짓말의 근본에는 ‘혈통’, ‘혈육’이라는 자신들의 자리들이 있습니다.

그 자리를 키우고 번창하고 든든하게 만들기 위해, 달리 말해서 남의 자리를 부수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의 혈육 자리를 포기할 생각이 없는 것이 인간들의 본성이요 거짓말 하기입니다. 이런 본성을 그대로 가지고 거룩하고 성스러운 하나님을 상대하고 싶어합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근거로 자신과 가족을 거룩한 가문으로 변모되게 해달라는 겁니다.

하지만 이 착하기의 방향성과 관심사와 목적이 잘못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리가 위기를 맞이해야 합니다. 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위기 말입니다. 우리 자신의 자리의 가치보다 더 나은 가치가 곧 예수님의 자리라는 곳을 고백하게 하는데 있어 우리 자리의 붕괴는 필수입니다.

빌딩 청소원들의 곁에는 항상 밀대가 놓여있습니다. 그 밀대가 바로 그 사람의 본분과 하는 일을 말해주고 사명을 알려줍니다. 밀대없는 청소원은 청소원이 아닙니다. 이와마찬가지로 진정 우리가 하나님의 가정이라는 밀대같은 십자가가 우리 가정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 십자가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만이 우리를 의롭게 합니다. 이 그 피 앞에서 우리 자리 확보하기는 당연히 늘 위기이어야 하고 붕괴되어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안에 주님이 죽었은즉 우리도 늘 같이 죽은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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