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6. 30. 17:05

거짓선지자의 행패 (예레미야 20장 1- 4절)

본문 : 예레미야 20장 1- 4절
제목 : 거짓선지자의 행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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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9강-렘20장1-4(거짓선지자의행패)-jer100630

거짓 선지자의 행패

2010년 6월30일                          

본문 말씀: 예레미야 20:1-4

(렘 20:1, 개정) 『임멜의 아들 제사장 바스훌은 여호와의 성전의 총감독이라 그가 예레미야의 이 일 예언함을 들은지라』
(렘 20:2, 개정) 『이에 바스훌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베냐민 문 위층에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으로 채워 두었더니』
(렘 20:3, 개정) 『다음날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에서 풀어 주매 예레미야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 이름을 바스훌이라 아니하시고 마골밋사빕이라 하시느니라』
(렘 20:4, 개정)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너로 너와 네 모든 친구에게 두려움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그들의 원수들의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네 눈은 그것을 볼 것이며 내가 온 유다를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그들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옮겨 칼로 죽이리라』


성경은 지켜야 그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지키던 아니지키던 반드시 이대로 되어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즉 인간의 행함이 추가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하심을 나타내보이기 위해서 인간의 행함의 가치는 사정없이 제거되어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은 구원받을 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저주받아야 될 자에 대한 관리도 어디까지나 하나님 소관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스훌이라는 사람에 대한 관리에 대해서 하나님은 두 가지로 제시하고 계십니다. 하나는 그의 이름이 딴 이름으로 바뀌어져야 한다는 것과 그는 나중에 바벨론에 잡혀가서 그 이방나라에 가서 죽어야 한다는 그의 미래상에 관한 겁니다.

바로 이러한 예언을 알려주는 임무는 예레미야에게 맡겨졌습니다. 따라서 예레미야가 사적인 감정이 “욱!”라고 올라와서 바스훌을 저주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천국으로 제대로 가고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은 곧 필히 다른 사람들은 제대로 지옥을 가고 있다는 사실과 짝을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사람이 구원받아 천국 가는 경우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어이 지옥 갈 사람들을 지옥 보내시는 업무를 하신 여파로 인하여 어떤 사람들은 천국을 가야만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바스훌은 왜 예레미야는 구원된 자인가를 보여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바스훌이라는 이름은 ‘세력을 확장시키는 자’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요즈음 같으면, ‘김확장’, ‘최 번창’, ‘이 대성’ 정도가 되겠지요. 하나님께서 이 거짓 예언자에게 주목하시는 이유는 현재 그가 예레미야에게 대하는 태도가 그의 이름을 합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일반 선지자들 수준이 아니라 선지자 중에서도 고위층입니다.

예레미야를 가볍게 때리고 가두울 정도 같으면 그는 지상에 힘을 가진 사람입니다. 바로 이러한 세력자의 모습은 그의 이름에 합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사람들이 기대하고 원했던 바가 그가 대변해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사람들의 하나님 믿기나 성경 보기는 과거에 있었던 신기하고 멋있는 기적이 지금 자신들에게 되풀이 되기를 소원하면서 보게됩니다.

현실적으로 그것을 달성한 사람의 모델처럼 그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힘이 도리어 자신의 구원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예레미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구원’에 관한 겁니다. 하지만 그는 힘에 죽고 힘에 삽니다. 힘이 있는 한 그는 두려울 일은 없다고 여기면서 살아갑니다.

그러한 그 앞에 예레미야가 나타나서 그가 탐내는 세상 힘을 조롱하는듯한 예언을 하니 바스훌을 본때를 보이는 차원에서 보란 듯이 권세를 유감없이 행세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레미야의 생각은 다릅니다. 그 힘을 다 잃는 것이 지속적이고 일관성 있는 하나님의 구원작업이라는 겁니다. 이 작업을 하나님께서는 그대로 실시하신다는 겁니다.

그 실시하는 작업 중의 하나가 바로 바스훌이라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기피 인물이 되게 하시는 작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에게 새로 받은 이름은 바로 ‘사방으로 두려운 대상이 된다’는 이름입니다. 즉 사람들마다 “우리는 저 사람처럼 되면 안되는거야 큰일 나는 거야”를 인상을 심어줄 대표인물이 되게 하시겠다는 겁니다.

이처럼 유대나라 사람들은 지도층의 사람이나 밑의 백성들이 모두 지상에서 자신의 생존의 터전을 돈독히 하는데 필요한 힘 끌어모으는데 급급했지 결코 진정 이 세상으로부터 ‘구원 받아야 돼’라는 정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성경,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취지를 누락시키면서 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열왕기하 5장에 나오는 나하만 장군의 병고침 경우를 봅시다. 후대 사람들을 이구동성을 말하기를,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의 말에 순종하여 요단강에 일곱 번 들어가니 문둥병이 나았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나아만 장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병고침 받은 나아만 장군은, 힘을 원하고 기적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원리에 의해서 구원받았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에게 하나님께서 저주를 내려서 나아만 장군이 가진 문둥병이 그에게 덧입혀지는 것과 연관시켜 볼 때에,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나아만 장군의 문동병을 가져가신 겁니다. 바로 이 사실을 나아만 장군이 알게 된 것입니다.

왜 이런 해석을 해야만 하는가 하며는, 인간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해주는 사람에 한해서만 구원이 되는 것이 구원의 변함없는 철칙이라면, 필히 인간의 자신의 행위가 의미를 둘 수 있는 듯이 보이는 경우를 통해서 인간들의 잘못된 오해와 해석을 지적해 낼 경우로 쓰여져야 하는 것입니다. 나아만 장군은 자기가 자기에게 행한 행위를 사랑하게 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을 알게 된 자입니다.

즉 구원받을 수 없는 인간이 구원받는 식으로 하나님의 구원이 전개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경우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신약 시대에 와서 예수님께서 난데없이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는 사건입니다. 아직 열매 맺을 때가 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제자들이 다 보는 앞에서 애꿎은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셔서 죽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평소에 제자들이 여기기를, 평소에 자신들이 세상 보기와 예수님의 세상 보기가 일치되리라 여긴 그 선입견을 송두리째 엎어버리는 사건입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왜 예수님께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셔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인간의 표본입니다. 인간이 나름대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대로 선하게 행위하는 그 행위로 말미암아 새삼 구원이 되거나 지옥가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님께서 사건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즉 나아만 장군의 병고침이나 무화과 나무의 저주는 모두 예수님에게 그만한 권한이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예수님을 너무너무 당연하게 여기면서 사랑할 용의가 있느냐는 겁니다. 이런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필히 인간은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든지 자신의 행함에 가치와 의미를 두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과실 맺을 때도 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무화과나무를 저주하는 것이 예수님 입장에서 합당한 조치인 것처럼 인간도 같은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이런 형편을 조성하는 그 예수님을 너무너무 좋아하고 사랑하고 계십니까?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성경에서 힘을 부여받는 요령을 찾지 말게 하옵소서. 진적 저주받을 자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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