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6. 15. 22:20

용 서

《 설교 요약 》 2010년 6월 20일 이근호

〈 지난 주 설교 요약 〉

말씀이라는 터널을 지나지 아니하면 천국으로 가는 자가 아닙니다. 그 말씀 터널 속에서 왜 구원받아야 될 자들이 실은 하나님의 원수였던 자들인가를 알려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일점일획이라도 누락됨이 없이 그 진가를 다 찾아내십니다. 바로 ‘원수에 대한 일방적 사랑’이 모든 율법을 다 이루어내신 겁니다. 이로서 성도는 끊어지지 않는 예수님의 사랑을 위하여 살아가게 됩니다.


〈 이번 주 설교 요약 〉

본문 : 누가복음 6:34-38              제목 : 용 서

사랑은 단순한 호의가 아니라 생명과 죽음을 결정짓는 기준입니다. 과연 살아 있느냐 아니면 죽은 자냐를 결정하는 것은 숨 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아느냐 모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사랑의 내용은 용서입니다. 그래서 용서를 받지 못하면 죽은 자가 됩니다. 용서가 없기에 ‘용서’가 발생하지 않는 개인이 됩니다. 용서란 자신을 향하여 악한 일을 한 자가 있을 때 성립하는 상황입니다. 죄가 있기에 용서가 있습니다. 여기서 죄의 출처가 용서의 출처가 같은 곳이 아닙니다. 전혀 다른 곳에서 주어집니다. 죄가 일어나는 곳은 이 세상이지만 용서가 제공되는 곳은 이 세상이 아닙니다. 따라서 용서가 만들어질 수 없는 이 세상을 사랑해서는 아니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용서가 없는 곳은 죄에 대한 형벌만 가득 찰뿐입니다. 그곳에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 원수가 되는 짓만 나타납니다. 죄인들은 합세해서 하나님의 일을 조롱합니다. 또한 그들이 그렇게 사는 것이 그들의 본색에 맞는 일이고 그들에게는 부담 없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을 욕하고 미워하는 그 힘으로 그들은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버텨왔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을 욕하는 것이 부담이 된다고 여긴다면 그들은 몸 둘 바를 모를 것입니다. 참으로 인간이 구원되는 것은 하나님의 용서뿐입니다. 이 더러운 세상에서 어떻게든 그들과 합세해서 힘이라고 얻어내기 위해서 그들과 더불어 하나님을 욕하고 모독하면서 살아오기 때문입니다. 성도에게 감사가 나오는 경우는 하나뿐입니다. 본인부터 용서를 받아 용서를 알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가 되면 비로소 세상을 불쌍히 여길 수 있습니다. 세상을 가련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용서 없는 자가 얼마나 허무하고 부질없는 인생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안타깝게 여길 수 있습니다. 용서란 인간이 요구할 권리가 아닙니다. 도리어 권리 없는 자임을 노출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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