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4. 26. 19:36

낡은 옷과 새 포도주

《 설교 요약 》 2010년 5월 2일 이근호

〈 지난 주 설교 요약 〉

사람들은 자신을 인형처럼 가꿉니다. 하지만 그 모습은 하나님께 헌신해야 하는 성도의 본래의 모습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예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성도가 “죽어도 좋다”고 감격할 정도로 말입니다. 이 작업을 위하여 하나님은 ‘죄인’으로서 자기 백성을 불러서 ‘함께’ 하십니다. 이 ‘함께’하심을 통해서 예수님의 피가 성도에게 흘러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이 천국입니다.


〈 이번 주 설교 요약 〉

본문 : 누가복음 5:34-39 제목 :낡은 옷과 새 포도주

옷과 포도주의 공통점은 사람이 필요로 해서 생산해낸 생산품이라는 겁니다. 물론 관리는 사람이 합니다. 자신의 의식주와 관련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누구도 옷이 죄악스러워며 포도주가 악하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옷이 낡으면 사람들은 불편해하고 새 포도주가 생기면 사람들은 조심스러워합니다. 조치를 강구하게 됩니다. 낡은 헌 옷은 새 옷으로 바꾸려고 하고 새로 수확한 포도주는 땅에 쏟아지지 않기 위해 새 부대를 마련하게 됩니다. 다 인간을 위한 조치입니다. 이는 곧 헌 옷에 대한 포기 의사를 말하고 새 포도주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내는 태도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처럼 대비되는 두 개의 개념을 가지고 예수님이 오신 이유를 설명해내십니다. 이 두 개념은 상호 섞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기존의 것도 포기하지 않고 거기에다 예수님의 말씀을 담거나 섞어 넣을 수 있다고 여깁니다. 자기 포기가 되지 않으면서도 예수님을 자기 세계의 구조 안에서 수용이 가능한 인물로 여기겠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찢어진다”, “터진다”, “쏟아진다”는 표현을 동원해서 예수님과 인간이 만남에서 파열이 발생하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혼인집이라면 응당 일어나야 될 기쁨을 이 세대가 제대로 받혀주지 못해서 터지고, 찢어지고, 쏟아진다는 겁니다. 우울한 결혼식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필히 신랑측과 신부측이 소통이 안 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양쪽 다 뭔가 자신들의 자존심이 이 혼인식을 통해서 손상되었다는 내색을 하는 겁니다. 혼인을 하는 당사자인 신랑의 기쁨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것은 신랑의 새로움을 이해 못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남기신 모든 말씀과 사건은 기존의 인간의 힘으로서는 나올 수 없는 것들입니다. 자신이 스스로 ‘나는 낡아 찢어져야 마땅해’라는 인식이 없는 한 신랑의 내왕을 반길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