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9.29 17:55

목자와 양무리 (예레미야 23장 1-4절)

본문 : 예레미야 23장1-4절
제목 : 목자와 양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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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9강-렘23장1-4목자와양무리-jer100929

목자와 양무리

2010년 9월 29일                            

본문 말씀: 예레미야 23:1-4

(렘 23:1, 개역)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목장의 양무리를 멸하며 흩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
(렘 23:2, 개역) 『그러므로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내 백성을 기르는 목자에게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내 양무리를 흩으며 그것을 몰아내고 돌아보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인하여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23:3, 개역) 『내가 내 양무리의 남은 자를 그 몰려갔던 모든 지방에서 모아 내어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의 생육이 번성할 것이며』
(렘 23:4, 개역) 『내가 그들을 기르는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축이 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접촉하는 기능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제사장 기능이요 다른 하나는 목자 기능입니다. 이 두 기능은 요한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에게서 만납니다. 목자와 양이 만나는 유일한 접촉점은 바로 ‘목자의 죽음’입니다. 즉 목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희를 위해 죽어야 한다”고 멘트를 날리면, 참된 양들은 “우리는 바로 그런 목자만을 고대했습니다”고 화답하는 겁니다.

이 노선 외에 달리 참된 목자와 접선되는 길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칭 양이라고 우기는 자들은 이런 참된 목자에 대해서 고개를 절레절레 하면서 다른 거짓 목자를 양산하고 찾습니다. 자신들이 기대하는 세상 것을 가져다 주는 목자를 찾게 됩니다. 바로 이런 가짜 목자은 구약 때부터 나옵니다.

오늘 여기에 나오는 목자들의 특징은 본인들이 목자 하겠다고 해서 나선 자들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하나님께서 목자하라고 맡겨 준 자들이라는 점입니다. 목자 노릇할 자격이나 능력이 있는 자가 아니라 그냥 목자 해보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역할을 맡긴 것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날 때, 어떤 사람은 부잣집 아들로, 어떤 이는 극히 가난한 자식으로 태어나는 것도 다 하나님께서 역할을 맡긴 것입니다. 즉 가난한 인간이 부잣집 아들보다 질이 떨어져서 가난한 자식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냥 그 역할을 맡기신 것입니다.

1971년, 미국 스텐포드 대학에서 이런 실험을 했습니다. 감옥이라는 억압된 환경 속에서  평범한 자라 할지라도 자신이 일방적으로 맡은 역할에 어떤 식으로 적응해 나가느냐를 알아보는 실험입니다. 그런데 2주 동안 할 실험이 5일만에 강제로 중지되었습니다. 예상 밖의 심각한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실험에 참가하게 된 자들은 다들 대학 졸업 이상의 자기 성찰이 가능한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실험이 시작되지 '간수'들은 모욕적인 기합과 폭행을 일삼았으며, '죄수' 들은 처음에는 조직적인 저항으로 맞섰지만 나중에는 우울증과 자기비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교수는 간수될 자에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주지시켰습니다. 첫째, '이것은 나의 임무이다' 라고 생각하는 소명의식, 둘째, 제복과 선글라스가 주는 권위, 셋째, 죄수를 나와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고 한갓 대상물로 격하시키는 비인간적 대우.

오늘날 소위 하나님의 목자라고 자처하는 그 목사 세계에서 자기 최면 걸 듯이 되풀이해서 숙지하는 내용들입니다. 아무리 선량한 자라도 주어진 역할로서 상황에 처하면 자기 분수를 잊게 됩니다. 참된 선지자들에게 안에 예수님의 영이 계시기에 장차 오실 메시아의 희생을 발산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가짜 목자들은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하는 숨겨진 악마성을 목자 역할극을 통해서 유감없이 발산하게 됩니다. 이처럼 가짜 목자가 먼저 등장해야 비로소, 사람들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일, 즉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에게 얻어 맞아 죽는 식으로 새로운 피조물을 만들어내는 전략이 성사됩니다.

히브리서 7장에 보면, 제사직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먼저 철석까지 레위지파에서만 나온다고 하셨다가 결국에는 유다 지파에서 영원한 제사장이 나온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레위지파에서만 제사장이 나오는 취지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참된 제사장을 말하기 위해서 죄악된 제사장들을 앞서 배열하는 겁니다.

이런 경우는 목자 기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세기 49:24을 보면,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요셉 지파에서 목자 기능을 한다는 겁니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시편 80:1에 등장하는 일을 하십니다.

즉 “요셉을 양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자여 빛을 비취소서”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목자 역할을 해야 하는 그 요셉 지파가 이스라엘 전체를 대변해서 참된 목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진정 무엇이 이 지상에서의 참된 목자상인 것을 친히 배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시편 78:67-71에 보면, “또 요셉의 장막을 싫어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유다 지파와 그 사랑하시는 시온 산을 택하시고 그 성소를 산의 높음 같이, 영원히 두신 땅 같이 지으셨으며 또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저희를 이끄사 그 백성인 야곱, 그 기업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고 되어 있습니다.

즉 레위지파에서 도출된 제사장직이나 요셉 지파에서 도출된 목자직이나 모두 유다지파에 속해 있는 다윗의 자리가 최종적으로 완성될 기능입니다. 이는 히브리서 7장에 보면,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는 하늘에 속한 족보, 멜기세덱 족보가 지상에서 오직 유다지파를 통해서만 접촉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남은 양들만 따로 포로잡혀 가고 그들에게는 기존의 목자상과는 전혀 다른 목자들을 보내어 하나님이 계시는 이 땅으로 되돌아오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이 여호와께서 예수님이라면 그 예수님은 바로 그 거처를 십자가를 통해서 이 지상에서 하늘로 변경시켰습니다.

따라서 레위지파에서 제사장이 나온다는 율법이나 요셉 지파에서 목자가 나온다는 그 율법이나 모두 옛 지파에 속하는 겁니다. 이 모세 율법의 취지는 그 역할을 맡은 인간들로부터 죄를 끄집어내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해서 인간에 의해 죽어버린 그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한 메시아가 되셔서 그 ‘대신 죽으심’만을 근거로 새로운 자기 백성을 삼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성령이 임한 사도들은 자신들을 만물의 쓰레기로 보았습니다. 고린도후서 4;12에 보면,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3에는,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즉 어떤 이도 유일하게 구원의 능력으로 작렬하는 그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가릴 수 없다는 겁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죄인인 줄로 알아 양이 양답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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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십자가마을 2010.10.02 20:4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079-렘23장 1-4(목자와 양무리)-jer100929-이 근호 목사

    2010-10-02 18:14:06 조회 : 13 이름 : 오용익


    079-렘23장 1-4(목자와 양무리)-jer100929-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예레미야 23장 1절부터 4절까지입니다. 구약성경 1086페이지입니다.

    예레미야 23:1-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목장의 양 무리를 멸하며 흩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 그러므로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내 백성을 기르는 목자에게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내 양 무리를 흩으며 그것을 몰아내고 돌아보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인하여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내 양 무리의 남은 자를 그 몰려갔던 모든 지방에서 모아 내어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의 생육이 번성할 것이며 내가 그들을 기르는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축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 목자를 보내신 것은 목자를 편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고 하나님의 관심사는 양에게 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의할 것은 하나님의 관심 있는 양과 자칭 하나님의 양이라고 우기는 사람과는 차이를 둡시다. 하나님의 양도 아니면서 양인 척 하는 사람들은 가짜 목자를 원하지 진짜 목자는 혀를 내두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습니다.

    요한복음 10장에 보면 나오지요. 양과 목자의 만남은 하나의 접속점을 갖는데 그것은 뭐냐 하면 목자가 이렇게 이야기하고 양은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목자가 말합니다. ‘내가 너를 위해서 죽으러 왔다.’ 목자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양은 ‘그런 목자를 기다렸습니다.’라고 목자의 죽음이라는 공통성 안에서 상호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회적으로 가는 길이 없어요. 다른 루트를 통해서 하나님이 보낸 목자를 반길 수 있는 것은 일체 없습니다. 목자의 죽음 안에서 비로소 목자는 양을 알고 양은 목자를 안다는 것이 비로소 거기에서만 성립됩니다. 그런데 가짜 양들은 진짜 목자에 대해서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다가 가짜 목자가 가면 아주 대환영을 하지요.

    그래서 성경전체를 보면 이렇습니다. 목자의 죽음 때문에 하나님께서 먼저 진짜 목자를 보내시는 것이 아니고 가짜 목자를 먼저 보내놓고 그 가짜 목자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양떼라는 것이 가짜목사와 합세를 해서 까부는지를 보게 하시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은혜로 남은 양들이 있어요. 이 양들은 자기 행위로 남은 것이 아니고 은혜로 남은 양들인데 이 은혜로 남은 양들은 자기 죄를 알아요.

    ‘아, 우리는 우리 힘으로 구원되는 것이 아니구나.’ 그때 진짜 목자와 만나게 되면 그것으로 거짓목자와 참된 목자를 구별할 수 있는 눈을 갖게 됩니다. 신약 적으로 하면 성령이 오면 갖게 되는데 고린도전서 2장에 보면 성령이 와야 십자가의 의미를 비로소 안다는 겁니다. 십자가의 의미를 진짜 아는 사람의 특징은 뭐냐 하면, 다른데 더 이상 눈 돌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십자가 알고 다른데 눈 돌리면 그것은 성령이 온 것이 아니고 흠, 하고 다시 평소에 자기가 교회 와서 얻고자 하는 그것에로 쏜살같이 달려갑니다. 모든 인간이 다 그렇지요. 그런데 갑자기 성령이 들이닥쳐 버리면 ‘오, 십자가! 내가 그동안 잘못 살아왔어. 내가 그동안 미쳤어. 평생 동안 나는 뭔가 잘못된 인생을 살았어. 나 위주의 인생을 살았어. 나 좋으라고 하는 하나님, 내가 좋아하는 예수를 찾았어. 아, 인생 잘못 살았구나.’

    아주 통곡을 하고 후회를 하면서 이런 죄인을 자기 피로 구원해주신 주님에 대해서 눈을 돌리지 않습니다. 혹시 세상으로 가더라도 늘 다시 돌아오도록 성령께서 돌보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계획은 절묘하지요. 먼저 가짜 목자를 보내는데 이 가짜 목자가 목자를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이 아니고 가짜 목자노릇을 할 사람을 임의로 뽑아서 가짜 목자노릇을 하고 양 노릇도 하는 겁니다.

    인생살이가 다 그래요. 어떤 사람은 부잣집에서 태어나야 되고 어떤 사람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야 됩니다. 그것이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부잣집에서 태어난 사람보다 질이 떨어져서 가난하게 태어난 것이 아니고 재벌 2세는 그 역할을 해야 되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사람은 그 역할을 해야 되고 그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는 가난하게 태어나고 하나는 부자로 태어나는 거예요. 잠언서에 나와 있습니다.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차피 가짜 역할이고 누가 해도 가짜거든요. 1971년 미국의 스탠포드대학에서 실험을 해봤습니다. 재미있는 실험을 했는데 감옥에서 인간의 품성이 어떻게 달라지는가에 대한 실험이었습니다. 유명한 ‘간수와 죄수’의 실험이라는 겁니다. 대학을 나온 인텔리들 중에서 ‘2주 동안 실험에 응하면 차 한 대를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드리겠습니다.’라고 광고해서 신청자 받아서 그 중에서 24명 뽑아서 그 중에서 무작위로 간수 12명 역할 맡기고 나머지 12명 죄수역할을 시킨 겁니다.

    인상착의나 그동안의 행실이나 마음 씀 같은 것을 일체 고려치 않고 무작위로 누가 어떤 역할을 맡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임의로 뽑아서 역할을 맡게 한 겁니다. 그래서 정해진 대로 죄수역할 맡은 사람들은 24시간 감옥생활 해야 되고 간수는 3교대로 출퇴근을 시켰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실험임을 미리 통보했습니다.

    흔히들 하는 말로 체포에서부터 감옥에 가고 그 감옥에서 생활하는 이 모든 것이 실험, 그야말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었어요. 이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힘들거든 언제든지 중단할 수 있다고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5일이 지나자 간수들은 죄인들을 거칠게 다루면서 모욕을 주고 기합을 주고 패기도 하면서 아예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죄수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만두지도 않고 스스로 죄수인양 자기노릇을 충실히 하면서 죄수다운 모습들을 보여주더라는 겁니다. 인간 자체가 달라졌어요. 그 때 간수에게 세 가지를 줬습니다. 첫째, 소명의식, 간수로서의 역할을 다하라는 의식을 줬고, 두 번째로, 선글라스와 제복을 줬습니다. 세 번째로, 저 죄수를 인간도 아닌 단순한 동물로 취급하라는 지시를 했습니다.

    그 세 가지를 집어넣으니까 인간성분이 달라졌습니다. 그 실험의 과정을 보면서 딱 목사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부나 목사, 소명의식이 있지요. 두 번째로 제복이 있지요. 세 번째, 교인들은 자기 밥 먹여 살리는 살찐 양들로 보입니다. 목사들이 노회로 모이면 저희들끼리 즐거워요. 어느 양을 얼마나 벗겨먹었는지 그것이나 자랑하고 있어요. 다른 것 없어요.

    바로 그 역할을 하나님께서 하게 하신 겁니다. 그 실험에서 죄수역할을 했던 사람을 거꾸로 바꾸어 보면 똑같아요. 제 글에 그런 것이 있지요. 처음에 권력을 접할 때는 자기에게 권력을 가지고 시키는 사람이 있지만 나중에는 알아서 빌빌 긴다고. 한국교회 모든 교인들이 처음에는 ‘목사나 교인들이나 다 평신도고 목사를 따로 높이는 것은 천주교나 하는 짓이지 개신교는 그런 것이 없다. 그런 것을 극복하는 것이 개혁주의다.’라고 해도 교회 생활 1년도 안되어서 자진해서 목사에게 빌빌 깁니다. 참, 인간이 못됐어요.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는가? 장차오실 메시아의 두 가지의 기능적인 구분이 있습니다. 하나는 목자 역할로서의 예수님과 또 하나는 제사장역할로서의 예수님입니다. 우선 제사장 역할로서의 예수님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사장 역할을 하시기 전에 먼저 가짜 제사장 역할을 하는 사람을 보낸 거예요.

    그게 히브리서에 죽 나옵니다. 제사장이 있음에도 이스라엘 나라가 망하도록 주께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겁니다. 그것도 제사장역할을 하는 지파를 아예 고정시켰습니다. 쉽게 말해서 일당 주는 식입니다. 그게 바로 레위지파지요. 그런데 성경전체를 보면 제사장이 레위지파로 시작했다가 뭐로 바뀌느냐 하면 유다지파로 바뀝니다(히 7:11-15).

    그래서 우리 인간입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왜 그런 장난을 치시나. 장차 유다지파에서 오실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한 제사장이라면 아예 초장부터 예수님을 유다지파로 보내서 오시면 될 것인데 왜 제사장은 철썩 같이 레위지파에서만 나온다고 다들 그렇게 알도록 해놓고 그런 식으로 하시는가.’ 하는 겁니다. 심지어 모세가 받은 율법조차 아예 레위지파로 못 박아 놓았어요.

    일구이언을 하지 않는다는 하나님께서 레위지파를 통해서만 제사장이 온다고 못을 박아놓고 ‘레위지파는 무효! 옛 율법은 무효! 그것은 내가 뒤에 있는 새로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잠시 맛보기로 앞에 있는 율법을 주었지~롱!’ 이렇게 하고 바꿔치기 하는 거예요. 왜 그랬을까요? 제가 이미 설명해 드렸습니다.

    사람들이 상상도 못하는, 인간을 만드신 분이 인간에게 얻어맞아 죽는, 정말 이것은 상상도 못한, 인간의 아이디어에서는 나올 수가 없는 겁니다. 신이 자기가 만든 인간에게 얻어맞아서 연고나 바르는 정도가 아니고 얻어맞아서 아예 죽어버리는 하나님이라는, 악마로부터 죄에 물든 인간에게서는 도저히 그런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는 죽는 하나님을 보내시기 위해서 기존의 선악과 따먹고 자기 맘대로 생각하는 하나님과의 교체작업에 나서신 거예요.

    쉽게 하면 이렇습니다. 아까 이야기했지요. 레위지파에서 제사장이 나왔을 때 레위지파는 신의 복장인 유니폼을 입고, 요새 같으면 선글라스도 썼을 거예요, 그 당시에는 선글라스가 없을 때니까, 그렇게 턱 차려입고 오게 되면 그 앞에서 박사고 대학교수고 뭐가 다 엎어집니다.

    교회에서 대학교수니 뭐니 해도 장로보다 목사가 높지 목사보다 장로가 높을 수가 있습니까? 글쎄요, 목돈 되는 장로 같으면 또 모르겠지만. 목사들이 노회에서 배우는 것이 그거 아닙니까? 대학교수니 뭐니 교인들이 좀 많이 배웠다고 기죽지 말고 저주받는다는 소리 팍팍 해서 초장에 기를 박살내버리는 것, 목사들끼리 서로 그 기술을 배우거든요.

    그거 잘하는 목사가 존경받는 목사고. 그런 목사는 때려죽여버려야 되는데 우리가 안 죽여도 주께서 다 알아서 죽이도록 그런 목사를 시켜놓은 거예요. 지옥가기 위해서 목사 시켜놓은 거예요. 그래서 목사 되어서 구원받는다는 이것은 참 드문 경우에요. 목사하게 하신 것은 더욱더 죄인중의 괴수임을 알게 하기 위해서 하게 하신 것이라는 것을 교인들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목사 같으면 몰라도.

    제가 들은 이야기인데 어떤 시어머니가 며느리 둘을 불러놓고 ‘얘들아, 내가 시어머니 노릇 못한다. 내가 돈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늙었을 때 좀 봐다오.’라고 이 ○○권사님이 이야기했다는 거예요. 수요설교 준비하면서 이거다! 했습니다. 시어머니 역할을 할 때 ‘나는 시어머니 될 자격이 없다, 얘야.’ 참……!

    이런 이야기는 누구를 칭찬하는 것 밖에 안 되는데, 말 괜히 꺼냈다 싶은데요, 그것이 목사한테도 그대로 적용되고 장로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러분, 저 장로 자격 없습니다.’ 그 이야기를 평소에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집사도 마찬가지고. 제사장은 레위지파를 통해서 나온다는 이야기는 히브리서에 나왔기 때문에 사람들이 웬만하면 다 압니다.

    그런데 목자도 가짜 목자가 개입되는 그것이 성경적 근거가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거 있습니다. 이게 어디에 나오느냐 하면, 창세기 끝에 모세가 이스라엘을 축복할 때의 장면인데 창세기 49장 24절에 보면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목자가 나도다.”라고 목자가 난다고 했어요.

    목자가 난다는 것은 이미 창세기부터 이스라엘을 뭐로 본다? 양으로 본다. 양과 목자가 짝을 이루는 트거든요. 목자 없는 양 없고 양 없는 목자 없습니다. 양이 있다는 말은 목자가 등장해야 된다는 말이고 목자가 등장한다는 말은 자기가 아는 양은 따로 챙길 능력이 있다는 말이거든요. 목자의 역할은 마귀로부터 지키는 것, 양의 역할은 목자만 따르고 모든 것을 맡기는 것, 여권이고 돈이고 몽땅 다 맡기듯이 다 맡기는 것,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우리의 생명은 하늘에 있다.’라고 그냥 맡기는 것.

    제발 양이 목자 흉내 내지 마세요. 양은 양 역할 하면 됩니다. 그냥 믿고 따르면 되지 양이 자기가 알아서 자기 갈 길 다 챙기고 자기가 똑똑하고 착해 버리면 목자는 뭐합니까? 목자 하는 역할 다 자기가 빼앗아서 나중 되면 ‘나는 목자 필요 없습니다. 나는 워낙 착하니까.’라고 나오면 듣는 목자 섭섭합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사 536) 목자가 끌어 모으고 목자가 제 갈 길로 간 양을 위해서 대신 채찍 맞는 그 세트, 그래서 제가 요한복음 10장의 이야기를 했는데 목자는 양 앞에서 항상 ‘내가 참 철딱서니 없는 네 대신 죽는다.’는 음성, 그 멘트, 그 내용으로만 지금도 목자가 양과 만나는 거예요.

    ‘양아, 이제는 내가 더 이상 네게 가르칠 것이 없구나. 하산하여라. 처음에는 철딱서니가 없었는데 이제는 네가 스스로 설 수 있다.’ 이런 멘트, 이런 발언이 목자 입에서 안 나옵니다. 양이 스스로 서는 양이 어디 있습니까? 베드로가 ‘제가 목숨 버릴지언정 주를 떠나지 않겠습니다.’ 했는데 하이고, 마귀가 노립니다.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서 영원한 양이어야 합니다. 그런 목자가 나온다는 지파가 놀랍게도 유다지파가 아니고 여기서는 요셉지파에요. 그러면 레위지파를 통해서 제사장이 나오는데 이것이 인간적인 제사장, 다시 말해서 히브리서에 의하면 죄만 짓는 제사장, 제사할 때마다 계속 자기 죄도 겸하여서 터져 나오는 가짜 제사장들, 진짜가 따로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먼저 등장했어야 되는 가짜들, 그 역할을 하면서 더욱더 자기 죄가 까발려져야 하는 제사장들.

    제사장들이 제복 입히고 권력 주니까 인간이 인간인지라 자기가 대단한 인간인줄 알고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이 주신 권력을 자기 소유화 시켰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망한 거예요. 제사장들, 서기관들, 왕들, 선지자들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간 계급으로 들어간 거예요. 하나님께서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들에게 요구한 것은 희생이었습니다.

    ‘장차 오실 메시야의 희생을 네가 먼저 시범조로 보여줘라.’ 그래서 그것을 보여준 거예요. 사도행전에 나오지요. 사도바울이 뭐라고 했습니까? ‘나는 평생에 금이나 은을 탐내지 아니하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음을 그대로 살았다.’(행 20:33-35)고 했습니다. 요새말로 펀드나 부동산, 이런 것에 눈독들이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나는 만물의 찌끼(쓰레기)같이 되어서 우리는 약한 자되고 너희는 강한 자가 되고 우리는 죽는 자가 되니 너희는 좀 산자가 되어줘.’(고전 4:9-13)라고 했습니다.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여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고전 4:9-13)

    그것은 예수님의 영이 아우라처럼 둘러써서 그런 거예요. 성령이 사도바울을 둘러쳐서 그런 거예요.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사도 같은 선지자와 제사장들이 구약에도 있었습니다만 대부분이 가짜였는데 그 가짜 제사장들은 하나님이 어떤 자리를 주니까 그 자리가 자기의 숨어 있던 세상적인 욕망을 달성하는 자리로서 자기소유화 해버린 거예요. ‘소유화’

    제가 10월 9일 날 대전에서 오후 3시부터 가을특강 합니다. 제가 잡은 주제가 ‘천국과 지옥’입니다. 아주 유치한 주제를 가지고 해요. 왜 그렇게 유치한 주제를 걸었느냐 하면 소위 복음에 대해서 안다, 많이 배웠다 하는 사람들, 다시 한 번 기본 토대로 돌아가야 돼요. 유치하다고 여기는 것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봐야 돼요.

    ‘천국과 지옥’이라는 주제인데 그 앞에 뭐가 하나 붙어 있어요. ‘거지 나사로가 본 천국과 지옥은 무엇이었던가?’ 하는 겁니다. 거지 나사로가 보았던 천국과 지옥입니다. 그냥 점잖은 사람, 혹은 건강한 사람이 보는 천국, 지옥, ‘나는 지옥 안가고 천당 갈래.’ 이것 말고 실제로 지상에서 지옥 같은 삶을 살았던 거지 나사로가 간 그 천국은 어떤 사람이 가고 지옥은 어떤 사람이 갔는가를 출발점으로 삼으려고 해요.

    그거 보면 어떤 소유를 안고 있다는 것은 폭탄을 안고 있는 것처럼 아주 위험한 겁니다. 뭔가 소유한 게 있다는 것. 제사장들이 그런 식으로 권력화 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 시편 8편 1절에 보겠습니다. “요셉을 양떼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 목자여……”

    ‘요셉지파에서 목자가 나오기 전에 요셉지파가 먼저 누구한테 배워야 되느냐 하면 요셉지파를 친히 인도하시는 여호와의 목자 됨됨이를 요셉지파가 배워서 요셉지파가 목자 역할을 해야 되는데 그 앞에 시편 78편에 보면 실패로 끝나요. 시편 78편 67절, 68절을 보니까 하나님께서 “또 요셉의 장막을 싫어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유다 지파와 그 사랑하시는 시온 산을 택하시고” 또 70절, 71절에 보면 “또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양을 지키는 중에서 저희를 이끄사 그 백성인 야곱, 그 기업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시나니.”라고 합니다.

    사사기에 보면 요셉지파인 사사들이 역할을 크게 해요. 기드온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에브라임지파와 요셉지파가 땅을 제일 크게 차지하는 이유가 주께서 그 사사시대 당시에 요셉지파로 하여금 목자의 기능을 하게 하셨어요. 그랬지만 그것은 나쁜 목자의 예를 드러내기 위해서 하나님이 맡긴 겁니다.

    되지도 않는 인간 하나는 죄수 시키고 하나는 간수시키고 해 보니까 엉터리 같은 죄수, 엉터리 같은 간수노릇 하듯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뭘 시키면, 목사를 시키든 장로를 시키면 시키는 순간부터 갑자기 목에 힘이 들어가면서 자기가 죄인중의 괴수인 것을 깜빡 잊어버리고, 깜빡 정도가 아니고 근본적으로 잊어버리고 본색이 슬슬 기어 나오는 거예요.

    십자가마을에 10월 9일에 결혼식이 있는데 누가 주례사를 미리 올려주실 수 없습니까, 라고 했기에 제가 주례사의 요지를 올려줬어요. ‘결혼할 때 내가 상대방으로 인해서 손해 봤다는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부부가 한 몸 된다고 몸이 딱 같이 붙어도 절대 한 몸 되는 법은 없어요. 한 몸이 안 되면 남는 것이 뭐겠습니까?

    ‘저이로 인해서 내 인생에 손해 본 것이 없을까? 저미로 인해서 내 인생이 망가진 것은 아닌가?’ 평생 나란히꼴로 가지요. 이익 본 것은 생각 안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애초에 잘났으니 이익 보는 것은 당연하고 ‘내 인생이 저 인간으로 인해서 망친 것이 아닌지.’ ‘내가 저 여자 안 만나고 다른 여자 만났으면 더 이익을 봤을 것인데 저 여자로 인해서 내 인생이 손해 본 것이 없을까?’

    주례사의 요지는 ‘결혼을 손해냐 이익이냐를 따지지 말고 하세요.’ 라고 적어놓았습니다. 아마 느끼는 바가 있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역할을 맡겨 줬을 때 그들은 ‘야, 하나님이 우리를 특별대우 하는구나.’ 세상에, 남보다 더 나은 특별대우는 없습니다. 역할이 그런 것뿐입니다. 사람은 이쪽으로서 죄인임을 드러내고 저쪽으로서 죄인임을 드러내는 거예요.

    고린도전서 3장에 보면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다고 있거든요. 자라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는 거예요. 사도바울이 그 점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볼로? 베드로? 내가? 이 사도바울 내가 십자가 졌느냐? 나는 누구한테 세례준적이 없는 그것을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세례를 주게 되면 그 사람은 나 때문에 세례를 받았다는 식으로 우겨서 십자가 그 피의 공로를 사도인 자신이 가려버리는 분위기가 교회 내에 형성될까봐서 심히 걱정하고 있는 거예요. 진짜 그런 걱정하면 그런 목사는 복음 아는 목사입니다. 이 목사라는 것 때문에 심히 가리지 않을까를 걱정하는 목사, 진짜 성령 받은 목사입니다.

    이 장로 때문에 심히 십자가 피를 가리지 않았을까, 하는 장로. 아예 안하면 안 되고 그 역할을 하기는 해야 되는데 그것이 바로 성경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다루시는 방식이에요. 그것 말고 다른 방식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사기에서 요셉지파로 하여금 목자노릇을 하게 해놓고는 드디어 다윗 대에 와서는 제사장이나 그리고 목자나 모든 것이 어디로 하나로 모아지느냐, 다윗의 자리로 모아지고 그 다윗의 자리가 옛날 모세율법을 철폐시키는 요소가 들어 있는 거예요.

    그러면 레위지파, 다시 말해서 율법은 뭐냐, 율법은 육의 죄를 끄집어내기 위해서 주어졌고 그것은 혈통이 인간적인 혈통이라면 다윗지파의 혈통은 멜기세덱,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는 하늘에 속한 족보에서 내려온 것과 접속되어 있는 유일한 지파가 유다지파입니다. 유다지파에서 메시야가 오면서 인간의 육은 뗄 수가 없다는 거예요.

    이것은 새삼스럽게 무슨 실수를 했다는 말이 아니고 어쩔 수가 없는 거예요. 바로 그 이야기를 본문에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남은 양들을 내가 따로 빼가고 진짜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는 그날이 올 것이다. 악한 목자들아. 너희 악한 역할을 충실히 해라.마귀는 마귀역할 충실히 하고 귀신은 귀신역할 충실히 해라.’

    지옥 갈 인간들, 복음 모르는 인간들 그 역할 충실히 하세요. 우리가 바라는 목자는, 김 목사, 이 목사, 최 목사가 아니고 우리가 바라는 목자는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지금 우리가 맡은 인생이라는 역할이 죄를 있는 대로 다 끄집어내는 하나님의 전략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맡은 인생, 어떤 사람은 부자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가난하게 태어나도 양쪽 다 하나님께 불평하고 불만 하는 우리의 죄악 된 심보, 그것을 위해서 주님이 대신 피 흘렸다는 사실, 십자가에 눈 돌아가지 않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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